-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78
어제와 오늘 광화문에서 정릉 거쳐 국사당 선바위까지
11일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기로 진즉 정해 놓고 진료 끝나자마자 출발한다. 광화문역 8번 출구로 나가면 광훈이네 발광 집회와 마주친다. 뻔한 개소리에 귀를 더럽힐 일 아니다 싶어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방향을 꺾는데 내 또래 늙은이 하나가 젊은이들을 향해 말한다. “그쪽 아니고 이쪽으로 와야지, 이놈들아!” 안타까움 묻힌 말빛과 모순되는 혐오 눈빛, 저 이중구속 협잡을 뿌리치고 젊은이와 아이는 즐거운 낯빛으로 동십자각을 향한다.
갈수록 진화하는 깃발, 다양해진 발언, 마치 이미 이룬 듯한 표정이 물결치는 풍경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변방 늙은이 부끄러움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애써 누군가를 보려고 하지 않아도 모든 모습이 눈에 담긴다. 초등학생 발언을 들으면서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나라 걱정이 단박에 사라진다. 대한민국은 좌파에게 점령당했다고 믿는 서울법대 출신 아버지서껀 잘난 사람들 질타하는 20대 여성 이야기에서 막연한 희망 아닌 세밀한 설렘을 감지한다.
행진하는 동안 이따금 보도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거기에는 이런 일과 전혀 무관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걷는 많은 사람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참여하고 싶어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 일상을 챙겨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러나 서울 생활 인구가 천만 명이라는데 행진하는 사람은 30만 명 남짓 되려나. 하기야 3.5%가 무혈로 세상을 뒤집는다고 하니 한눈팔 일은 아니지 싶다. 저런 눈길로 모든 시민이 거리를 걸어가는 세상을 만들려고 걸어야 맞다.
12일 일요일, 광화문 집회가 언제 있었냐는 듯 시침 뚝 따고 있는 광화문 거리를 일부러 다시 와 걷는다. 당연히 평상시 휴일 오전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한가롭고 고요한 대로 휴일다운 들뜸이 넘실거린다. 어제 누군가가 오늘 누군가로 여기 설 때 세상이 달라지고 아니고는 사뭇 다르리라. 나는 아직 달라지지 않은 세상 뒷덜미를 보며 여기 서 있지만 이미 달라지는 중인 세상 앞가슴을 품어 들이며 여기 서 있기도 하다. 기묘한 홀가분함에 배어든다.
홀가분함에 배어들 때 나는 백악산 동편 그 너머 정릉으로 간다. 머나먼 내 고향 평창 가기 어려워 가끔 찾는 ‘작은’ 고향이다. 올해로 정릉 처음 발디딘 지 만 60년이다. 60년 전 그 모습을 간직한 숲이 있다. 수백 년 세월 품은 느티나무 한 분도 까마득한 후손을 반긴다. 60년 전 그 그늘에 앉아 쌍욕 가득 채워 운명 일러주던 거리 예언자 아주머니가 홀연 떠오른다. 나라 말아먹도록 입방정 떤 요즘 점쟁이들을 보면 무슨 쌍욕 했을까 슬쩍 웃음이 괸다.
신덕왕후께 감사 예를 갖추고 숲길 한바퀴 돌아 정릉을 나온다. 발길은 백악산 서편 그 너머 인왕산 국사당으로 향한다. 본디 호국 신령인 남산에 있었으나 왜놈 제국이 강요해 옮길 때 태조와 무학대사 기도처인 여기로 모셔 왔다고 한다. 강토에 식민 그림자 드리워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왜놈 앞잡이가 정권 잡고 내란 일으켜 나라 시끄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국사당 앞 내 심사는 무겁지 않다. 선바위 앞에서 감사 예를 갖추고 내려온다.
여기 국사당과 선바위는 30년쯤 전에 온 적이 있다. 장안에 뜨르르했던 강신무 한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내가 쓴 붓글씨를 보고 깜짝 놀라며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높은 수호령 가호를 받는 분이라 자기 수준에서는 감당하지 못하니 여기 가보라고 했대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으나 오늘은 여기 온 이치를 알아차린다: 신덕왕후와 태조, 그리고 무학대사가 함께 이룬 조선 건국 기상이 나를 이끈 팡이실이 사건으로.
어제와 오늘 광화문에서 정릉을 거쳐 국사당 선바위까지 오는 동안 새록새록 곡진함이 쟁여진다. 선출된 권력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고 실패한 뒤에도 양아치 짓을 거듭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이 모멸을 떨쳐내려면 진짜 대한민국을 건국해야 한다. 여태 시난고난 애면글면 꾸려온 대한민국은 허울 대한민국일 따름이다. 흠일 숭미 매판 세력이 낱낱이 커밍아웃한 이참에 모조리 때려잡고 제7공화국 아닌 개벽 제1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엎드려 큰절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