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과학이 발달하면 종교는 소멸한다는 담론이 한 시절을 압도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 말을 좇는 자가 있겠지만, 이는 마치 종교가 제시하는 천국이나 극락이 실재한다는 말을 좇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종교라는 서사가 인간 공포·탐욕·무지에 터 한 마법적 사유 유희일진대 과학 발달이 아무리 완전해진다 해도 공포와 탐욕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소멸은 어림없는 일이다. 마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 궁지에 몰린 인간 악조건이 존재하는 한, 인간 종교 의지는 막지 못한다. 마법적 사고는 유아기 고착 또는 퇴행을 의미한다. 유아기 고착 또는 퇴행은 정신적인 질병 상태다. 병식(病識)이 없다. 헤어 나오기 대단히 어렵다.
한의원에 오는 사람 가운데, 온갖 병원, 갖은 요법을 전전하다가 포기하고 맨 나중에 혹시나 해서 찾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들은 결코 한의사를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존경이나 신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왔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효과는 기적처럼 나타나길 바란다. 금방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다그친다. 한의사 관지에서 보면 어이없는 상황이다. ㅂㅇ는 이따금 사실을 적시한 뒤 예의를 갖추되 엄격하게 대응한다.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준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이미 마법적 사고에 빠진 유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상황인 셈이다. 물론 한의사가 승려나 신부 아닌 선무당 대우 받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픈 아이 앞에서 그 차이는 아무 의미 없다.
20년 넘게 뚜렛증후군에 시달린 ㅈㅌ가 ㅂㅇ를 찾아왔다. 그때까지 ㅂㅇ가 경험한 뚜렛증후군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틱 증상 백화점이었다. 강도도 심해 특정 동작의 반복 때문에 염증이 유발되고, 피부가 변형될 지경. 당연히 자율신경 실조, 사회불안, 강박, 우울장애가 결합해 있었다.
ㅈㅌ는 미리 자기 상황을 알리는 글을 써서 가지고 왔다. 증상을 10가지로 분류하여 적었고, 그동안 받은 치료도 6가지로 나누어 적었다. 맨 마지막에 질병으로 말미암아 잃은 바를 조목조목 적었는데, 그가 얼마나 자신의 문제에 착념하고 해결하려 애썼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ㅂㅇ는 전혀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효과 없었던 각종 방법을 그가 다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차분히, 세계가 비대칭 대칭으로 구성되고, 그 자발적 깨뜨림으로 운동한다는 진실부터 전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갔다.
어떤 환자보다도 상담에 보이는 ㅈㅌ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ㅂㅇ가 묵직한 신뢰를 두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인은 두 가지 정도다. 우선, ㅈㅌ 역시 종교적 상황에 있었다. 기적 같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만 했다. 잔잔한 대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20년 동안 오매불망 제거되기만을 바라던 부정적 현실을 어찌 평가 없이 인정하란 말인가. 사실 ㅂㅇ도 정서적으로는 십분 공감하는 터였다. 오죽하면 여북하겠나.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면···그 생각 간절했다. 그럴 수 없기에 담담하되 극진한 대화를 이어 나아갔다. 다른 길은 없었다.
ㅈㅌ는 견디지 못했다. 그 잘못이 아니다. ㅂㅇ 잘못도 아니다. 모두에게 잘못 없지만 어긋나는 일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치료자 ㅂㄹ로서는 이 일을 의당 자기 잘못이라고 새긴다. 위장된 교만일 수 있지만, 망상이라도, 죽는 날까지 ‘입을 댄즉 병이 나았더라.’라는 풍경을 꿈꾸어야 한다. 그 꿈마저 꾸지 않는 의자 삶이란 얼마나 꿉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