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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토막을 든 소녀

by 강용원

한의원 원장실에 놓인 사진 넉 장에는 내 아내와 딸, 프리모 레비, 체 게바라, 그리고 나무토막을 든 소녀가 담겨 있다. 물론 뒤 두 사람은 코르다가 찍은 것이다. 『나무토막을 든 소녀』는 코르다의 삶을 바꾼 작품이다.

코르다가 어느 가난한 시골을 찾았을 때 어여쁜 소녀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 소녀는 무서워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안고 있던 나무토막을 쓰다듬으며 소녀가 말한다. “울지 마, 아가야.” 살 돈이 없어서 나무토막으로 대신한 인형이다.


소녀와 인형.jpg


나는 때때로 이 사진 앞에 선다. 체 게바라 사진 앞에 설 때보다 살갗이 훨씬 더 얇아진다. 나무토막에서 생명을 감지하고, 아가 “의미”를 발견하는 소녀 영혼이 내 둔한 겉껍질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없고, 있기는 하냐고 따질 수도 없고, 무슨 소용이냐고 비난할 수도 없는 무엇이 “의미”다. 그저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의미는 “관계의 실재다. 접합과 교감이 일으키는 사건이다. 사랑과 상상력이 빚어내는 미학이다. 생태학이 피워 올리는 주술이다. 연속성과 우연성 교차가 창조하는 경이다.”

소녀가 품은 세계를 물활론이라 웃으며 지나치는 ‘어른’ 눈에 그 세계는 주검이다. 온 세계가 신성하다는 진리를 비웃는 '어른'은 인과율, 합리성, 상거래만을 생생한 질서로 여긴다. '어른'은 주검을 착취한다.

과학 저널 <생물 보존>에 따르면 현 추세가 계속될 때 100년 안에 지구상의 모든 곤충이 멸종된다고 한다. 곤충 멸종은 인류 멸절로 이어진다. 인류 멸절은 '제국 인간'이 의도한 바다. 급격한 곤충 소멸 주요 원인이 집약농업, 도시화, 기후변화기 때문이다.

나는 정색하고 일어나 『나무토막을 든 소녀』 앞으로 간다. 세상에 다시없이 예쁜 아가를 안고 있는 소녀 깊은 눈을 마주한다. 진리를 가득 담은 슬프도록 커다란 검은 눈동자, 거기 참된 신이 춤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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