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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라고?

by 강용원

고 김하늘 님 명복을 빕니다. _()_

매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살인자가 우울증 병력을 진술했다. 매체는 또 양의사 소견서에 문제가 있다고도 전한다. 그러나 우울증과 살인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표한 매체는 없다. 그냥 전제했음이 분명하다. 이 부박한 논리가 아무런 여과도 없이 순식간에 전방위로 살포되는 현실이 우리 “언론” 수준을 폭로해 준다. 우울증 환자가 살인했다더라.

우울증은 단순하고 간단한 기분장애가 아니다. 자기 존재 자체를 비하하고 부정하는 증후군 상태 정신장애다. 공포·불안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정신 셧다운을 취하는 병리다. 이를테면 정신 자살이다. 그 정신 자살이 마침내는 생명 전체 자살을 이끌기도 한다. 자살 병리에서 타살 논리를 끌어낼 묘수는 없다. 취재원이 우울증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고 하라도 기자라면 의문을 제기했어야만 한다: 우울증 환자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나?

우울증 깊게 앓다 쉰한 살에 늦깎이 의자가 된 나는 이십 년째 우울증 환자와 만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우울증 환자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있었지만, 남을 해친 사람은 없었다. 학문 차원에서든 임상 경험 차원에서든 우울증은 선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나는 말한다. 선하다는 말은 타자와 연결되려고 자기파괴에 이르는 희생을 삶 기조로 삼는다는 뜻이다. 자기파괴에 이르는 희생을 기조로 삼는 삶에서 살인이 나올 수는 없다.

살인자 우울증 병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건 진행 과정과 전후 정황으로 볼 때 우울증은 자기 상태를 숨기거나 꾸미기 위해 제시한 표현이었으리라 본다. 수사 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이대로 ‘우울증 환자가 살인했다’라고 굳어지면 수많은 우울증 환자가 도맷값으로 넘겨질 판이다. 엄청난 여파가 밀어닥칠 수도 있다.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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