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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있다

-음모론과 투사-

by 강용원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다. 일제와 미제 식민지, 그리고 허울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무수한 전통·풍속이 사라져갔지만 70년 다 돼가는 기억 속에 대보름과 다음날 보고 듣고 참여했던 일들이 또렷이 남아 있다. 강원도 지방에는 대보름 다음날 특별한 풍속이 있었다. 그날 이름이 “귀신달갠날”이다. “달랜다”라는 말을 강원도에서는 “달갠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귀신달갠날은 귀신을 달래는 날이다. 대문 고리에 체를 걸고 바늘을 달아 놓아 귀신이 쳇불 구멍을 세다가 날이 밝아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어찌어찌 들어와 귀신이 제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가면 한해가 흉하거나 죽는다고 믿어 신발을 엎어 놓거나 방안에 들여놓기까지 했다.

과학과 이성을 바탕으로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면 싹 다 무의미하다. 그 주류 서구 시대정신을 모방하며 우리는 변방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래서 귀신은 그렇게 다룰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구 지성계 유력한 첨단 축을 이룬다는 진실에 어둡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제국 지성 선두 그룹은 이미 내가 제창한 범주 인류학 지평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알아채면 우리는 또 뒤를 따라가야 할 테다. 지긋지긋하다.

내란 일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가 우리 사회 일각을 광란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저들을 비판할 때 이구동성으로 “음모론에 빠졌다”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음모에 심취하는 “망상”이라고 한다. 정말 음모란 존재하지 않으며, 저들은 다만 망상에 빠졌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저들은 음모론자가 아니다. 저들은 음모자다. 부정선거라는 음모를 꾸민 장본인이다. 그 증거가 김명신이며 명태균이다. 하여 저들은 자기 음모를 상대에게 덮어씌운다. 이른바 투사 전략이다. 저들이 일으킨 내란은 음모론에 빠져서 저지른 불장난이 아니다. 자기 음모를 덮으려고 꾸민 또 다른 음모다. ‘부정선거는 없었다’가 답이 아니다. ‘부정선거는 네가 했다’가 답이다.

윤석열이가 전광훈 휘하 극우 유튜버들이 꾸민 이야기를 들먹이는 건 심취해서가 아니다; 투사 전략에 동원하는 전술 가운데 하나여서다.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26년 동안이나 검사질 한 작자가 모를 리 없다. 헌재 쟁점도 아닌 이 문제를 계속 떠들어대서 시선을 돌리고 폭동을 선동하는 유일한 목적이 ‘명태균게이트’ 핵심 사항 중 하나인 부정선거 은폐다. 친위쿠데타 당시 선관위를 덮친 실제 목적도 그 증거-존재한다고 보고-인멸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정치권도 언론도 시민도 본질을 놓치고 있다. 문제는 음모론이 아니다. 문제는 투사다. 투사를 제대로 알아야 음모 악무한을 관통할 수 있다. 음모는 제국(과 그 부역 국가) 본성이고 음모론과 투사는 제국을 지탱하는 두 병기다. 음모론은 방어에 쓴다. 상대가 음모를 들추고 나올 때 음모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음모론으로 상대 공격을 막는다. 투사는 선제공격에 쓴다. 이번에 윤석열이가 쓴 병기는 투사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 역당을 온전히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부단히 펼쳐질 부역 세력 망동을 제압할 수 있다.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음모는 사라지지 않는다. 음모론을 오해하고 투사를 외면한다면 계속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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