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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더불어

by 강용원

광화문역 혼잡을 예상하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안국역 쪽으로 올라간다. 헌재 부근 집회가 끝나고 광화문 집회로 합류하니 동십자각 쪽으로 방향을 튼다. 매국 종자들이 리카온 무리처럼 몰려 있거나 하이에나 무리처럼 어슬렁거리지만 애잔해 보인다. 저들은 대체 왜 저러고 살까. 거대하게 흘러가는 민주시민 물결 변방에서 표범처럼 혼자 발자국을 찍고 간다.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진은영 시인이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서 인용한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구다. 진은영은 <시인의 말>에서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라고 썼다. 애써서가 아니더라도 홀연히 내 외로움에 와닿는 이 왜 없으랴. 지난주 인천 부부 얼굴이 떠오른다.

바로 그때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하필 말로가 단상에 올라 노래를 막 부르려는 찰나여서 눈앞에 있는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는데 바로 그 인천 부부다! 우리는 지난주 그 음식점에서 소주 한 잔 나눈다. 허락을 얻어서 사진도 한 장 찍는다. 여성 배우자 머리 위에 있는 예쁘고 재밌는 띠가 눈길을 끌어서다: 응원봉 색은 형형색색 석열이 색은 개색. 냐하하하!

어디서 매입하지는 않았을 듯해 물으니 남성 배우자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재료들을 구하고 문구를 구상하고 한 자 한 자 써넣고 조립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두 사람이 나누었을 법한 대화와 웃음을 상상하며 나는 내가 그때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환상으로 순간 이동한다. 아무렴. 동시성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팡이실이 초유기체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져 매끄럽게 행진 대열 속으로 흩어진다. 잠시 뒤 나는 종로타워 바로 앞에 선다. 이 각도에서 사진 찍을 일은 다시 없다는 믿음으로 얼른 담아둔다. 나중 어느 날 이 사진을 보면 그 부부가 생각나지 않을까. 그들과 함께 이 나라 민주·자주를 곱게 되새기지 않을까. 행진이 낙원상가에 닿았을 때 나는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역을 향한다.

집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는 숲길에 들어서니 문득 지금쯤 텅 비어 있을 광화문 광장이 그리움과 안쓰러움으로 다가든다. 안쓰럽다는 감정은 광장을 외로움 느끼는 존재로 여길 때 생겨난다. 숲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언제나 들던 바로 그 느낌과 같다. 어둠에 잠긴 숲이나 텅 빈 광장이나 내게는 모두 살아 있는 시공이다. 외로움으로 우리는 혼자 더불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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