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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 다시 살아나>

by 강용원



오늘 광장으로 열여섯 번째 간다. 지난주보다 훨씬 많은 시민이 모인 탓에 혼잡해진 광화문역은 정차하지 않는다 한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인사동을 지나 동십자각으로 향한다. 송현동 언덕길로 올라가는데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헌재 판단이 늦어져 불안과 분노가 증폭되고 있어서다. 인파를 따라 흐르다가 갑자기 울컥 눈물을 쏟는다. 눈물은 한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온다. 꺽꺽거리며 구호를 외친다. 다시 올 때는 축하주 나눌 줄 알았던 광화문 광장에서 똑같은 구호를 외치다니.


언제나처럼 본 집회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나는 먼저 나와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다. 오후 5시 반이 평소 정해 놓은 저녁 식사 시각이기 때문이다. 식사하면서 행진 선두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면 식사를 마무리하고 행진에 합류한다. 행진 종료 시점쯤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아 바로 귀가한다. 식사하면서 생각한다: 왜 눈물이 났을까? 문득, 안국역 지날 때 촛불행동 집회 공연 녹화 화면에서 누군가 부른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따라 부른 일이 기억난다. 아, 이 노래가 눈물샘에 기별을 넣었구나.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 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안치환이 만든 이한열 열사 추모곡이다. 40년 가까이 지난 오늘 광장에서 다시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은 얼마나 아프고 슬픈가. 사악한 독재자 부부 정권이 살해한 민주주의를 추모하며 눈물 흘리는 일은 얼마나 분하고 서러운가. 모름지기 내 가슴 속 어디선가 이 탄식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을 테다. 느낌이 오고 알아차림이 열리는 일은 언제나 몸보다 나중이다. 그렇게 느끼고 알아차려지자 나는 비로소 오늘 흘린 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주 한 잔 눈물처럼 채워서 벌컥벌컥 소리 내 마신다.


행진 선두가 다가온다. 나는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일어선다. 스며들 듯 행진 대열 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이라 여겨 찍어두었던 종로타워를 다시 보고야 마는구나.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시 찍는다. 행진이 오늘은 왼쪽으로 틀어 6번 국도를 따라간다. 종로3가역에서 회군해 다시 종각을 향해 간다. 종착지가 어딘 줄 모른 채, 회군하는 대열을 계속 따라가기는 뭣하다 싶어 종로3가역에서 멈춘다. 집 가까운 곳에 이르러 나는 소줏집으로 들어간다. 혹시 남은 눈물 있으면 여기다가 놔두고 집에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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