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7
마침내 사직단
미일 제국에 부역한 매국노 지배 집단이 나라를 참담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눈물 광장을 떠나 대취한 채 쓰러져 잔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몸으로 일어나 앉아 문득 사직단으로 가야겠구나, 한다. 어떤 맥락이 작용했는지 잘 모르지만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을 때 역사를 돌아보고 근간을 찾아가는 일이 필수라면 꼭 똑 알맞은 곳이 사직단 아닐까, 생각에 닿는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왕조 양대 근간이었다. 그중에서도 사직단은 종묘보다 우선시된 최고 성역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종묘 제례를 거르는 수는 있어도 사직대제만큼은 반드시 올렸을 정도다. 국가 강토를 지키는 사(社), 백성 생명줄인 곡식을 지키는 직(稷), 두 신께 올리는 제사니까 당연하다. 나도 오늘 사직, 두 신께 기고제를 올리기 위하여 삼가 떠난다.
기고제(祈告祭)는 나라가 큰일을 당했을 때 사직단에서 올리는 제사였다. 지금 큰일이 일어난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나는 준비해 간 정화수를 여덟 번 따르고 삼배를 올리면서 간절히 빈다: 경술년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후손들이 이제 을사년에도 똑같은 망동을 저지르고 있나이다. 사악한 왜놈 주술에 미혹된 수괴 연놈과 그들을 둘러싼 매판 카르텔을 수거하소서!
두 겹 담 안에 모셔진 제단이 사직단 지성소다. 거기에는 조선 고위층 양반조차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으며 지금도 출입 금지다. 다만 네 신문(神門)을 통해 들여다보거나, 서신문 뒤쪽 언덕에서 내려다보아야 그나마 일부라도 볼 수 있다. 조망 시점을 얻으려면 국가유산청 자료 사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 한계 안에서 꼼꼼히 돌아본다. 아쉽기에 더 고마워한다.
고백건대 그동안 나는 정말 수없이 사직단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앞으로 난 사직로를 경유하는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 3년을 다녔다. 한양 도성길, 인왕산 둘레길, 서촌을 걸을 때도 여러 번 가까이 갔지만 단 한 번도 들여다볼 호기심조차 내지 못했다. 서울살이 육십갑자 올해 나라가 극심히 어지러워지자, 사직 두 신께서 팡이실이 통해 나를 부르신 게 아닐까, 싶다.
가까이 있는 서촌마을로 들어간다. 먹자골목은 해맑게 붐빈다. 점심 먹고 사직단 경계 따라 인왕산 쪽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간다. 어느 지점에서 비교적 괜찮은 조망 시점을 확보해 사직단을 다시 내려다본다. 또 올 수밖에 없다고 예감한다. 사직은 내게 물 품어 흐르게 하는 어머니 대지며 거기 깃들어 서로 살리는 푸른 생명 팡이실이 상징이다. 아아, 이제야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