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나직 높이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비범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오래 기억난다는 법은 없다. 평범해서 오히려 뇌리에 깊이 박히는 사람이 있다. 평범함이 비범함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오랜 인습을 버리면, 평범함에 깃든 은은한 숭고를 목도할 수 있다.


ㅊㄱ는 평범 화신 같은 사람이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말투도 웃음도 울음도 직업도 모두 평범이라는 인감을 찍어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 우울장애조차도 평범하다고 고백하는 듯했다. 그와 숙의하는 과정도 똑 그와 같았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나 또한 그렇게, 평범하게, 나직나직, 우울과 삶을 이야기해 나아갔다.

우수 서린 눈, 허스키 목소리, 느릿느릿한 말투에서 이미 그 내면 전경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생애 초기부터 똑똑하지 못해서, 잘생기지 못해서 공공연히 비교당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인정해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제 상처를 덧나게 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도 대부분 아무런 존재감이 없거나 소외된 채로 지냈다. 대학에 와서는 우울증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과정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교사가 되고 나서도 내 능력에 늘 불안을 지니고 살았다. 아이들과 상대하는 일도 어렵기만 했다. 새 학년도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울은 어김없이 깊어졌다.


ㅂㅇ 선생과 숙의치료를 하면서도 나는 여일한 반응을 보였다.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나는 ㅂㅇ 선생이 민망해할 정도로 담담하게 숙의를 계속했다. 이 신근한 평범함이 부지불식간에 나를 나직나직 높은 곳으로 이끌어갔다. 어느덧 나는 행복 기본값이 한 뼘 높아진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ㅂㅇ 선생과 맺은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애하고 혼인하고 아이 낳고 양육하는 긴 과정 내내 나는 가족과 함께 종종 그를 찾아갔다. 극적인 감동과 보람을 안겨준 어떤 사건보다 내가 이 숙의와 만났다는 사실은 보석 같다. 보석이 지니는 가치는 스스로 빛나는 데에 있지 않고, 누군가 소중히 간직해주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준 인연이었다. 혹 이 인연이 평범하게 스러지더라도 나는 그 평범함에 둘러싸이고, 그 평범함을 둘러쌀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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