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치 미학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뭘 해도 능력보다 일 잘되는 사람이 있고 잘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함에도 우리 경험이 먼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사실이다. 중요한 인생사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깊은 우울장애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 ㄹㅋ가 반쯤 넋 나간 얼굴을 하고 들어섰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매우 똑똑하고 육감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삶이 이렇게 서로 어긋나기도 하는구나, 젊은 날 내 자신에게 품었던 상념을 문득 떠올렸다.


나는 10살이 채 못 되어 아버지를 잃었다.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내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이후 내 삶은 내 똑똑함과 무관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뛰어난 내 육감은 늘 좋지 않은 일에만 적중했다. 내 이런 삶에 어머니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형제자매 또한 어려운 일이 터지면 감내하며 살라고 강권하는 선에서나 개입했다. 나를 가장 잔혹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일은 사기 결혼이었다. 배우자 가족은 의도적으로 나를 속이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정신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과 결혼시켰다.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불행과 마주하느라 내 인생 황금기가 다 지나갔다. 어느 정도 수습은 했지만 나 자신과 삶 자체를 향한 우울감은 갈수록 짙어졌다. 치료하지 않으면 내가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소원 하나마저 물거품이 되겠다, 싶어 숙의치료자 ㅂㅇ를 찾았다.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제 소원은 세상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기입니다."


어둠 보는 눈이 너무 밝아서 아프디아픈 삶을 살아온 ㄹㅋ의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까? 다음 숙의를 예약하고 여느 때처럼 나간 어느 날부터 그가 홀연히 소식을 끊었다. 만일 지금 세상 어둠 하나가 빛 하나로 바뀌고 있다면 거기 그가 있지는 않을까, 가끔 그를 떠올린다. 그를 떠올리면 루시아 벌린이 얼핏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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