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나는 공황장애와 강박장애, 그리고 우울장애에 굳게 결박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30대 남자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 ㅂㅇ 선생과 숙의치료를 해왔다. 약속된 상담 말고도 무려 76통의 편지를 보내 이야기를 계속했다. 카카오톡으로도 수백 아니 천 통 넘는 문자를 보냈다. ㅂㅇ 선생은 필요에 따라 간단히 또는 소상히 답신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오늘도 마음 아픈 사람들이 숙의치료실을 찾았겠지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위로받기도 하고,
그들이 그늘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막막함을 느끼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선생님!
그동안 늘 제게 깊이 마음 써주시고, 늘 그 마음 표현해주시고, 늘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 마음 문이 언제나 그렇게 열려있다는 사실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모릅니다.
저는 선생님과의 인연을 언제까지라도 끊고 싶지 않습니다. 그 관계가 정말 스승과 제자, 더 나아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처럼 특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처한 현실을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편지가 더는 이어질 수 없을 듯합니다.
제가 밝게 웃으며 선생님을 찾아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날이 언젠가 꼭 오리라 믿으며 여기서 인사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안녕하시길···”
ㅈㅇ에게 바깥으로 현저히 드러나는 고통은 공황과 강박이었다. 공황과 강박이 그토록 강고하고 질기게 떠나지 않는 원인은 숨어 있었다. 뿌리 깊은 자기부정, 그러니까 우울이었다. 우울은 공황과 강박을 입에 문 채 어둠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물귀신이었다. 그 물귀신은 부모의 은근하면서도 단호한 차별적 양육 태도가 불러들였다. 은근한 차별은 차별을 차별로 느끼지 못하게 했다. 단호한 차별은 차별을 깨뜨리지 못하게 했다. 무감과 무력의 관성이 문제를 직면하는 힘을 갉아먹었다. 공포에 떨 뿐이었고 한사코 반복할 뿐이었다.
크게 두 번 고비를 넘기며 치유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 문제 핵심으로 접근하려던 내 시도는 가로막혔다. 숙의는 돌연 중단되었다.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다. ㅈㅇ이 어찌 사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 한 ㅈㅇ에게 그리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ㅈㅇ과 내가 극진함으로 나누었던 숱한 말들이 종자로 남아 있다가 적절한 때, 새로운 영혼으로 싹트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 단단한 현실성 너머 어딘가 불가피한 가능 성지를 전 재산 털어 사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