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김밥전

그리고 딸아이와의 추억

by 사유경

중학교 시절 소풍을 다녀온 날 저녁, 가방을 열어보니 먹다 남은 김밥 몇 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반쯤 풀린 김과 살짝 마른 밥알이 왠지 애처롭게 보였다. 그냥 냉장고에 넣어 두면 다음 날 푸석해지고 맛이 없을 게 뻔했는데, 그 순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계란을 풀고 있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이미 김밥을 꺼내 도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있었다.

“남은 김밥, 그냥 두면 아깝잖아. 김밥전 해 먹자.”

엄마는 능숙하게 젓가락을 휘저으며 계란을 풀었다. 노란 달걀이 고르게 섞이는 모습이 신기하게도 따뜻하고 정겨웠다. ‘김밥도 전이 될 수 있나?’ 의아해하던 내 마음과 달리, 엄마의 손놀림은 주저함이 없었다.


곧 김밥 한 알 한 알이 달걀물에 푹 잠겼다가 노릇한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팬 위에 올려졌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순식간에 부엌을 채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불러서 아무것도 못 먹겠다”라고 말하던 나는 어느새 냄새에 이끌려 프라이팬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김밥전은 겉은 달걀옷이 바삭하게 익었지만 속은 김밥 본연의 촉촉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막상 한입 베어 물자, 평범한 김밥과는 전혀 다른 맛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식감, 달걀의 고소함과 김밥 속 재료들의 조화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 순간 나는 ‘남은 음식’이라는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새로운 요리를 먹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날 이후로 소풍 다음 날 아침엔 늘 김밥전이 식탁에 올랐다. 고소함이 더해진 김밥전을 먹는다는 생각에 소풍보다 오히려 그 다음날 아침이 더 기다려질 정도였다. 김밥전을 먹으며 나는 소풍의 여운을 이어갔고, 엄마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딸의 소풍 도시락을 싸 주는 엄마가 되었다. 소풍을 다녀온 딸의 가방을 열어보면, 꼭 몇 알은 남겨온 김밥이 보인다. 나는 그 김밥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달걀을 꺼낸다. 밥알이 굳기 시작한 김밥에 노란 달걀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구워낸다. 달걀 향이 부엌을 채우고, 따끈한 김밥전을 접시에 담아 딸 앞에 내밀 때면, 그때의 내 어린 시절이 겹쳐진다.


딸은 김밥전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는다. “엄마, 이거 진짜 맛있어요!” 하고 외치는 순간, 나는 오래전 나 자신을 보는 듯하다. 엄마가 내게 건네주던 따뜻한 접시, 그 속에 담겨 있던 정성과 사랑이 이제는 내 손끝을 거쳐 다시 딸에게 전해지고 있다.


언젠가 딸도 지금의 나처럼 엄마가 되어, 소풍 다녀온 자식의 가방에서 남은 김밥을 발견하게 될까? 그리고 그 김밥을 달걀물에 적셔 노릇하게 부쳐내며, 오늘의 나처럼 엄마를 떠올리게 될까? 내 엄마에게서 내 딸에게로, 그리고 또 그녀의 딸에게로 전해져내려 오는 작은 유산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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