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조카 협찬 + 나의 카피
지난 설, 큰 조카가 선물을 보내주었다.
무려 ‘존국델리미트’ 세트.
친구들보다 먼저 사회생활에 뛰어들어 어느덧 점장 자리까지 올라간 조카. 늘 자랑스럽고, 늘 응원해 왔다.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
아이들도 사촌언니의 선물을 무척 반가워했다.
도착한 날 바로 핫도그 번에 소시지를 끼워 간식으로 해치웠고, 어느 날 저녁에는 슈바인학센을 식탁 가운데 두고 맥주잔과 음료수잔이 바쁘게 오갔다.
그런데 여러 구성품 중 하나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이름도 생소한 ‘풀드포크’.
투명한 포장지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 갈색의 불린 건초 같았다. 썩 당기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풀드포크? 이름에 풀(草)이 들어가서 더 그런가?’
결국 검색해 봤다.
풀드포크(Pulled Pork)
돼지고기 어깨살이나 목살을 저온에서 오랜 시간 익혀, 손이나 포크로 쉽게 찢어질 만큼 부드럽게 만든 미국 남부식 바비큐.
오, 과정은 제법 그럴듯하다.
푹 익힌 양념 수육 느낌인가?
방학이 끝나기 전 어느 날, 풀드포크를 해동해 토르티야를 살짝 구운 뒤 버터헤드 한 장과 함께 듬뿍 올려 아이들 간식으로 내놓았다.
“엄마, 이거 완전 맛있어요. 엄마가 만들었어요?”
“아니, 민주 언니가 준 건데. 괜찮아?”
“완전요!”
아이들 반응에 나도 한 입 먹어봤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훨씬 괜찮잖아?
아이들은 하나로는 부족했는지, 자기들끼리 또 만들어 먹으며 부산을 떨었다.
봄이 가까워지려는지 비가 살랑살랑 내리던 며칠 전, 정말 뜬금없이 풀드포크가 떠올랐다.
먹방을 본 것도 아니고, 요리 프로그램을 본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거실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었을 뿐인데 뜬금없이 떠올랐다.
‘이건 계시다.’
걸레를 내려놓고 곧장 동네 정육점으로 갔다.
“수육용 고기 주세요. 넉넉하게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고기에 소금, 후추, 다진 마늘로 밑간을 해두고 레시피를 찾아봤다.
… 레시피도 재료도 제대로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벌써 귀찮다.
그래서 간단하게 갔다.
돈가스 소스 + 케첩 + 다진 마늘. 끝.
양파를 큼직하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렸다.
소스를 덮고, 양파가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부은 뒤 아주 약한 불로 은근히 끓이기.
내가 본 레시피에서는 밥솥에 하기도 하고, 슬로 쿠커를 사용하기도 하고, 수비드 머신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난 괜찮다. 냄비면 충분하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뒤집어주며 집안일을 이어갔다.
두 시간 반쯤 지났을까.
조금 과한 고소한 냄새가 나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양파가 타기 직전이었다.
불을 끄고, 재빨리 포크로 고기를 건드려봤다.
세상에.
고기가 힘없이 툭, 결대로 찢어진다.
아, 이거구나.
그래서 ‘pulled’ 구나.
괜히 영어 실력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한 김 식힌 뒤 본격적으로 고기를 찢기 시작했다.
비장한 마음과 달리 손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포크 두 개로 툭툭 건드리니 고기와 양파가 스르르 풀리며 스스로 증명했다.
“나 부드러워요.”
맛을 봤다. 조금 싱겁다.
돈가스 소스를 더 넣고 섞었다.
다시 한 입.
… 이거다.
기성품보다 맛있었다.
혼자 괜히 뿌듯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풀드포크 만들었는데, 또띠아랑 먹을 사람?”
“….”
“엄마 못 믿냐? 진짜 맛있어.”
“…그럼 어디 한 번…”
둘째가 조심스럽게 한 입 먹더니 눈이 커졌다.
“언니, 이거 대박. 맛있어.”
“엄마가 맛있다 했지?”
“맛있다면 먹어줘야지. 그럼 나 또띠아랑 해서 먹을게. 엄마 막둥이 것도 만들어둘까요?”
어느새 토르티야를 굽고, 채소 물기를 털고, 제법 능숙하게 간식을 만들어내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는데,
‘얘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눈이 시큰해진다.
이게 그건가.
갱년기의 시작?
“야, 엄마 것도 좀 줘. 너네만 먹냐?”
괜히 큰소리를 치며 마른세수를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