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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Apr 18. 2024

기증의 가치

김형미 문화부장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은 고인이 생전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2021년 국가에 기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순회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홉 번째 전시로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 ‘시대유감(時代有感)’이 오는 23일부터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기증품이 워낙 방대한 만큼 제작 시기와 가치에 따라 문화재급 고미술 작품 등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꾸려진 기증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특별전’도 6월 4일부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개최가 예정됐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제주에서 풍성한 예술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시대유감’ 전과 시기를 같이해 신 소장품전도 함께 마련한다. 제주 미술사를 토대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수집한 작품 157점 가운데 66점을 선보인다. 157점의 작품 중 구입한 작품은 74점, 기증 작품이 83점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2009년 개관 이후 총 980점의 작품을 수집했다. 구입한 작품은 433점, 기증 작품이 401점, 그리고 미술대전 대상 작품 등 146점이다. 구입과 기증이 거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지역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기증받아 소장하는 것은 도립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며 “‘컬렉션(수집)’에 방점을 두고 전시를 마련하면서 기증과 수집이 가진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제주도립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은 없다.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작품 구입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예산이 많이 삭감된 상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삶이 힘들 때 무엇으로 ‘위안’을 얻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이 ‘수집가’로서 어떤 의미로 수많은 작품을 수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기증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소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에는 ‘나눔’이라는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실제 제주도립미술관에서도 작품 구매가 인연이 되거나, 제주 대표 미술관에 자신의 그림이 소장되는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작가 또는 유족이 작품을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의미를 발견하고, 치유를 얻고 내재화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것이기에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작품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고, 거래금액이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시대에 기증은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은 최근 열린 콘퍼런스에서 교육에 대한 질문에 만약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생물학, 즉 인간의 이해에 관해 연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인공지능의 기적으로 인해 더는 코딩 교육이 필요 없으며, 모든 사람은 이미 프로그래머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향후 사업이나 연구에 있어 생명공학적 접근을 위한 답변이긴 했겠지만, 생명 분야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있는 젠슨 황의 발언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부지불식간에 성큼 다가왔다 하더라도, 결국 연대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관람료는 2000원이다. 제주도민이라면 1000원의 행복을 누려보길 권한다. 수집 작품을 들여다보며, 제주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겠다. 



퍽퍽하고, 고통스럽고, 아픈 현실 속에서 ‘기증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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