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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l 16. 2024

돌문화공원을 걸으며

한희정 시조시인



돌문화공원을 걸었다. 장마 사이 초록은 더 무르익어 살랑 바람에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눅눅했던 마음이 한지에 초록 물들듯 상큼하게 번져간다.



산수국 핀 입구를 지나 조붓한 길을 걸어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우뚝 선 거석 사이로 산수국이 고갤 빼꼼 내밀어 신화의 정원으로 안내한다. 저만치 처연히 서 있는 돌탑은 풀꽃조차 동행으로 감싸 안는 영락없는 설문대할망의 모습이다. 초록 잔디 펼쳐진 광장과 하얀 구름이 나무 끝에 드리워져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시 이끼 낀 돌담을 따라 숲길을 나서니 하늘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문대할망이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깃든 물장오리오름을 형상화하여 만든 호수다. 이곳 역시 바람이 살랑 불면 그 따라 물이랑이 번져 신비감이 더했었다. 지금은 사진 촬영 장소로 변하여 관광객들에게추억거리를 제공한다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호수 가운데서 온갖 포즈를 취하며 행복해하는 저들이 무슨 잘못이랴.



어느 새, 역사 산책길 앞에 왔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돌문화와 민간 신앙, 동자석 등 기능별로 숲길 사이사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 땅 전부가 돌투성이라 할 만큼 제주 사람들은 흔하디흔한 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어느 집 어느 손길에서 길든 돌그릇일까. 가슴이 뭉클해 온다. 그 순간 불쑥 푸른 하늘에 자귀 꽃이 머리를 풀어 헤쳤다. 담 너머 탐라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보니 잠시 길을 잃어 뱅뱅 돌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전통 초가마을을 재현해 놓은 돌한 마을. 가장 제주다운 색깔을 드러내는 마을 입구에 서면 긴 올레길 양쪽으로 초가지붕이 보인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은 착각에 발걸음을 재촉하려데 발밑에 봉숭아꽃이 배시시 웃는다. 어린 누이들이 꽃물 든 손톱을 자랑하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올레길 따라 봉숭아꽃이 피었다. 저 감나무 집은 누구네 집일까. 까치발로 울담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이 화산암과 현무암으로 담을 쌓아 경계를 지었던, 축담, 올레담, 밭담, 산담, 잣담 모두 함께 걸었다. 그만큼 제주의 돌들은 다양한 종류와 형상을 두고 사람들에게 품으로, 등으로 내어주고 있다.



한 바퀴를 돌아 나오는 길에 나지막이 길게 누운 모습의 건축물이 보였다. 자연과 어우러져 인공미의 한 수가 기대되는 설문대할망전시관이다.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완공을 위해 달려왔지만 아직도 공사 중이다. 어쩌면 오랜 기간이 걸림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우리 세대는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첫 삽을 뜬 지 20년이 훨씬 지났다지만 또 그만큼이면 어떠랴. 기다림의 미학도 필요하겠다. 이끼 낀 돌과 담쟁이 뻗는 거석 사이로 몸을 기대었다. 돌의 숨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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