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격 볼모지에서 나온 금메달

by 제주일보

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좌동철.jpg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가 고향인 오예진 선수가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낭보를 전했다. 2005년생으로 19살의 어린 선수가 여자 공기권총 10m 결선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했다.




표선중 2학년 당시 친구 따라 사격장에 갔다가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오예진은 제주여상 사격부에 진학했다. 제주 출신 홍영옥 코치의 지도로 오예진의 실력은 날로 성장했다. 홍 코치는 국가대표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세계 랭킹 35위인 오예진이 거둔 금메달이 더욱 값진 이유는 사격 불모지인 제주에서 세계를 제패한 명사수로 등극해서다.




제주지역 학교 사격부는 제주여상과 제주고, 표선고 3개 고등학교, 표선중, 제주동여중 2개 중학교 등 5개 학교에 학생 선수는 40여 명이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전자표적 시스템이 있는 학교는 제주고가 유일하다. 나머지 학교는 간이 사격장을 갖추고 있다. 42년 전인 1982년에 건립된 제주고 사격장은 낡고 전자표적의 오류가 잦아서 다른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온 선수들도 이곳에서 연습을 꺼린다.




제주에서는 2026년 10월 제107회 전국체전을 개최하지만, 제주고 사격장의 사대는 60개로, 최소 80개가 필요한 전국체전을 치르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제주에서는 10m 사격장만 있어서 10m 공기권총 또는 공기총 사격 연습만 가능하다.




실탄을 사용하는 25m·50m 화약총 사격장을 비롯해 경기용 엽총·산탄총의 사격 실력을 겨루는 클레이 사격장은 전무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김예지 선수(임실군청)는 25m 화약 권총 대회에도 출전하지만, 10m 사격장에서 연습해 왔던 오예진 선수는 선택지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제사격연맹이 주최하는 세계 대회에서 ‘올림픽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오예진은 지난해 자비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 출전해 2관왕에 올라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제주에서 국제 사격대회에 출전하려면 1000만원의 경비가 필요한데, 자비로 충당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김완근 제주시장은 최근 오예진 선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을 찾아가서 격려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 선수의 어머니는 친언니가 도남동에서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일하고 있다. 표선중을 졸업해 제주여상으로 진학한 오 선수를 위해 온 가족이 제주시로 이사를 왔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어머니가 뒷바라지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2년 실업팀으로 제주도청 사격팀을 창단했다. 오예진을 키웠던 은사 홍영옥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제주도는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며 창단 2년 후인 2014년 사격팀을 해체했다. 당시 사격 유망주들은 도청 사격팀에서 쫓겨나듯 퇴출당했다.




오예진의 약점은 부족한 경험이었다. 대한사격연맹은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19살의 오 선수를 위해 제주여상에서 3년 동안 전담 지도한 홍영옥 지도자를 여자 권총 국가대표팀 코치로 영입했다. 오예진은 “홍영옥 코치님은 사격이라는 스포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라며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제주에는 체고가 없어서 우수 선수들이 도외로 유출되고 있다. 더구나 종합 사격장이 없어 2년 후 열리는 제주 전국체전에서 사격대회 개최는 불투명하다.




비인기 종목이라서, ‘노메달’이라는 이유로 엘리트 선수들이 제주를 떠나고 있다. ‘사격 천재’라 불리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제2의 오예진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제주 체육계가 할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의 딸 오예진 ‘금빛 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