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박정한 세상에 그런 인연도 있구나 할 테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삼가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다. 내게 그런 연이 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수필로 만난 깊은 인연이다.
제주시 조천에 사는 동생 같은 양재봉 작가. 나는 그를 아낀다. 심성이 곱고 곧아 거짓부리가 없어 나와 의기투합해 마음 나눠 도탑다. 내가 삼촌뻘이어도 우리 사이엔 벽이 되지 않는다.
제주일보 ‘사노라면’의 필진이기도 한 그는 다재다능해 ‘家’ 자가 여럿 붙는다. 환경운동가, 미생물연구가, 서예가, 서각가, 수필가. 장르마다 기예의 손매가 섬세하고 식견이 깊다. 자신을 최상의 층위에 올려놓기 위해 집중한다. ‘家’ 자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 획득한 그의 소중한 자산이다.
어느 날 글 쓰고 붓 잡는 손이 내 인장을 새겨주질 않는가. 쓰는 손이 나무를 파다니. 신기해 그의 의중과 무관하게 내 작품집을 보내며 낙관으로 사용한다. 내가 새긴 것도 아니면서 흐뭇했다. 무심결 어딘가에 찍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그와 나는 마음으로 흐른다.
2년 전이다. 그가 산에 가 구지뽕열매를 따 부인이 곤 조청에 넣어 갖고 왔다. 뇌질환을 앓고 있는 나를 위해서. 중씰한 노인인 걸 잊은 사람이지, 나무에 올랐다 낙상하면 어쩌려고. 더욱이 구지뽕나무엔 가시가 돋아 있는데….
울컥했었다. ‘이 사람이 자기 힘듦을 무릅쓰는구나, 세상에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가 나무에 올라 딴 구지뽕 덕분에 내가 아직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 마음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34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그들 부부가 집에 왔다. 무서운 날씨에 쉬운 걸음이 아니다. 부인이 무겁게 들고 온 걸 내려놓으며 말한다. “구지뽕 조청입니다. 드셔보세요.” “아니, 이 더위에 어떻게 그걸.” 놀라 말이 막힐 지경이다. “아빠는 칠순이 눈앞이라 나무에 오르는 걸 망설이는데, 근령이(아들)가 대신했어요. 열매는 잘 익은 것 같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외아들 근령이는 외동딸 재경이와 농자재 사업을 하고 있다. 호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인력이 달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돕고 있는 걸 잘 안다. 자녀들 사업이 대박이라 환호하며 축하해주던 게 생각난다. ‘일에 바빠 정신없는 아들을 야산에 보냈으니.’ 말문이 막혔다. 천지가 활활 불타는 더위에 이게 어떤 선물인가. 계면쩍어 데리고 온 첫 손자 서준이를 안아 들추었다. 두 돌이 안 된 녀석이 무겁다. 듬직한 들돌 같다. 늦둥이 손주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금지옥엽으로 아낄 테다.
양재봉, 그는 소소한 일 하나도 대충하는 법이 없다. 매사가 반듯하고 치밀하니 하는 일이 미덥다. 부인이 불더위에 조청을 고느라 땀을 쏟는 모습이 떠올라 송구스럽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근령이를 언제고 안아줘야겠다. 일에 치여 사니 만나자, 시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서.
양 작가가 내년에 시집을 준비 중이다. 첫 시집이라 도와줘야지. 사랑한다, 양 작가.
구지뽕 조청을 떠넣는다. 열매는 까끄러우나 조청은 다디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