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다’

by 제주일보

<김대영 편집이사 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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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갑진년(甲辰年) 한 해도 하루 남았다. 연말이면 언제나 몸도 마음도 어수선하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헛헛함이 더 하다.


‘패악질’, ‘척결’, ‘원흉’ 등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거친 말들은 연말 대한민국의 밤을 얼어붙게 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대통령은 탄핵절차에 들어갔고,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군 장성과 경찰 수뇌부는 대거 구속됐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를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았던 대통령은 수사에 응하지 않으면서 ‘법기술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루만 지나면 푸른 뱀의 해라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을사년하면 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본군을 동원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떠오른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모든 외교권을 위임받는 등 사실상 주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으로 본격적인 한반도 침탈을 시작했다.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사회에는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으니 백성들 사이에서는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을 ‘을사년스럽다’로 표현하다가 ‘을씨년스럽다’로 변해 온 것이다.


120년 전 을사년에 세계적 격랑 속에 난파선이 됐던 우리는 또 다시 난파될 위기에 놓였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 뛴’ 대통령 때문에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격동의 한 해를 보내야 했던 대한민국이 맞는 2025년의 을사년은 침통하고 참담한 상황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질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2024년 12월 3일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질곡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밀실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망각한 결정을 내린 대통령으로 인해 국민들은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2025년 을사년을 맞는 것이 아니라, 을씨년스러운 2025년을 맞고 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우리 국민들은 을씨년스러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파릇한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게 할 것이다.


을씨년스러웠던 모든 일들을 디딤돌 삼아 희망찬 2025년 새해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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