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시론) 현무암 치유

by 제주일보

숲길을 걷다가 땅에 박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적이 있다. 뾰쪽하게 솟아난 돌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서 발목이 삐끗한 적도 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무심코 걷어찬 적도 있다.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누구나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제주에는 돌이 많다. 너무 많다. 땅속에도 있고 땅 위에도 있다. 해안에도 있고 밭에도 있고 집 울타리에도 있다. 오름에도 있고 한라산에도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있다. 그래서 제주는 돌로 만든 지형이다.



그 모양도 다양하다. 웅장한 절벽에서부터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것 하나 없다. 모두 제멋대로다. 다양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부동의 자세다. 그러다 산산이 부서져 흙으로 돌아간다. 소리 없는 돌의 진리다.



제주의 돌 중에서는 단연 현무암이다. 180만 년 전 화산분출과 함께 솟구쳐 올라온 용암이다. 제주 지형을 만든 시조의 돌이다. 화산분출의 산증인이다. 조면암이나 안산암도 있지만, 이들은 현무암의 자손이거나 퇴적암에 불과하다. 그만큼 현무암을 빼놓고서 제주를 말할 수 없다.



현무암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다. 다공질이다. 여유 공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다른 용암과는 사뭇 다르다. 지표로 분출한 용암 속의 기체가 빠져나가기 전에 굳으면서 생긴 공간이다. 그것이 오히려 여백의 미를 살린다. 가득 채우려다가 멈춰낸 비움이다. 그래서 여유로움이 더한다.



현무암에는 색깔도 있다. 본래는 어두운색이다. 이산화규소 함량이 적고 알칼리성분이 많아서다. 그런데 곳곳에 널려있는 현무암의 색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해안가나 오름이나 하천에 있는 현무암 색깔을 보면 알 수 있다. 검은색이거나 붉은색이거나 회색이다.



이렇게 변한 것은 화산활동 때 주변 환경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덩이 용암이 물과 만나면 급격하게 식는다. 이럴 때 용암은 더욱 검은색으로 변한다. 마치 벌겋게 구운 숯에 물을 부으면 검은색이 되듯이 말이다. 해안가 검은색 현무암이 그것이다.



일부 오름에 있는 현무암은 그렇지 않다. 땅을 조금만 파보면 알 수 있다. 치밀하게 형성된 단단한 돌덩이가 아니다. 헐렁헐렁 듬성듬성 부석부석하게 엉켜있다. 발로 비비면 금방 부서질 것 같다. 불덩이 채로 오래도록 남아 타고 타다 붉은색으로 변한 돌이다. 붉은색 자갈 송이다. 오름길에 덮여 있는 흙에서도 황토색이 감돈다.



하천의 현무암 바위는 또 다른 색이다. 구조 또한 비교적 치밀하다. 단단하다. 그리고 미끈하다. 오랫동안 넘쳐흐르는 물에 씻기고 씻기면서 땅속에 묻혀있던 현무암이 드러난 것이다. 때로는 사발처럼 생긴 돌개구멍도 있다. 자갈과 모래의 마찰로 만들어진 포트홀이다. 그러는 사이 현무암은 더욱 다듬어져 본래 색을 찾는다. 짙은 회색이다.



이처럼 현무암은 여백의 공간과 색의 멋을 갖고 있다. 그러함에도 너무 흔해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무암이 없다면 땅이 발판이 없어진다. 지탱해 걸어 다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를 지탱해주는 발판이다.



그리고 치유자원이다. 현무암 다공질에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정화기능이 있다. 곰팡이나 세균을 죽이는 항균 효과도 있다. 수분을 잘 흡수하고 음이온을 방출하기도 한다. 흙 또한 현무암에서 비롯된 풍화토다. 그래서 맨발로 땅을 밟으며 걷을 때 그것은 현무암 접지치유가 된다. 제주 지형 전체가 현무암 치유장이다.


<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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