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흡 대하실록)삼대 진사 가문

오태직, 진사 오점의 아들이자 오경로 아버지로 글씨와 문장에 출중

by 제주일보

▲오태직吳泰稷:1807(순조7)~1851(철종2), 문인, 서예가, 진사, 자는 여빈(汝賓) 또는 여대(汝大), 호는 소림(小林), 본관은 화순.



제주시 일도1동에서 진사 오점(吳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제주시 월평동(다락굿)의 진주강씨 댁에 장가들어 평생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1834년(순조34)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글씨와 문장이 뛰어나 시학(詩學)에는 ‘남주제일(南州第一)’이라는 평이었다.



아들 연와(蓮窩) 오경로(吳卿魯)도 시서(詩書)에 능했다.



오태직은 명필 오점의 아들이다. 또한 오경로의 아버지로서 진사이니 비록 향공(鄕貢)이라 하더라도 3대가 진사인 셈이다.



후손인 오원희가 3대의 교지와 과지를 모두 소장하고 있어 영예로운 일이다.



특히 시를 잘 지어 남쪽 지방 율시(律詩)의 첫째라는 평을 받았다. 지금도 몇 편의 시가 회자되고 있다.



교지는 다른 곳 교지들과 다를 바 없고 과지(科紙)는 시로서 대가의 풍도가 있다.



‘춘추와 요즘 세상에 무공을 의로운 전쟁이 없으니/ 누구가 능히 세운 무공을 사양하려 할까/ 옛날 진(晉)나라 문공이 제후를 모아 움직일 때/ 세 번 물러서서 그 기틀을 튼튼히 하였네.’라고, 몇 줄만 읽어도 붓을 머뭇거림이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태직의 시= 水仙花 수선화:昨日一花始見嘉:어제 한 송이 꽃이 아름답게 피더니/ 今朝승得兩三葩:오늘 아침엔 두 세 송이 더 피어났네/ 開三開四至無數:세 송이 네 송이 끝없이 피어나면/畢竟幽廬恐太奢:끝내는 고요한 초가집이 화사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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