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일보 시론-호접몽 달항아리를 그리는 고영훈 화백

by 제주일보

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오대혁.jpg


제주의 화가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전시와 판로까지 개척할 수 있도록 제주도가 ‘제주갤러리’를 서울 인사동에 열었다. 전시장 선정, 운송, 임대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섰던 서울 전시가 제주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갤러리를 열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리고 개관 기념으로 세계적 극사실주의 화가이자 한국 구상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고영훈 화백의 「호접몽(胡蝶夢)」이라는 이름의 특별초대전(3.16.~4.11.)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은 추상미술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사물의 ‘존재’에 집중하며 극사실주의 작품들 가운데 <코트>(1973)가 맨 처음 걸렸다. 그리고 돌(「This is stone 79」),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서적들 위로 둥둥 떠 있는 돌(「Stone Book 8535」), 깃털 하나하나를 담아낸 새의 깃(「새」1998.), 서적 위에 생명감 넘치는 호박꽃 줄기(「자연법-인생」2005.) 등 전기 작품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이 한쪽에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전시실에는 2002년을 전후해 환영(illusion)을 근간으로 하면서 확장된 변화를 보인 달항아리 연작들이 걸렸다.



그는 확장된 변화와 관련해 이전의 작품들이 자연과 문명이라는 대립적 관점에서 조화를 추구했다면, 그 이후 달항아리를 그리면서 불이(不二)적 세계 속에서 전일적(全一的) 사고를 전제했다고 했다. 불이, 전일적 사고가 무엇을 뜻하는가?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달항아리와 양 옆에 흐릿하게 표현된 달항아리 그림을 나란히 배치한 <호접몽>(2017)을 두고 그는 말한다. 제일 흐리게 표현된 왼쪽의 달항아리는 지나가버려 뚜렷하지 않은 과거의 이미지, 가운데 달항아리는 가장 명징하게 볼 수 있는 현재의 이미지, 조금 흐리게 표현된 오른쪽 달항아리는 미래의 이미지라고 한다. 어느 곳의 흙이 도공의 손으로 가서 달항아리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시공을 건너면서 수많은 이들의 손때가 묻어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진다. 그렇게 흙이라는 자연이 달항아리라는 문명이 되고, 호접몽, 곧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 되어 무상(無常)한 시공 속을 떠다닌다.



아마도 그에게 호접몽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무상(無常)의 세계를 말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달항아리 같이 수많은 이들의 숨결과 손때가 묻은 사물들을 온전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존재의 의의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서양의 극사실주의와 자신이 담아내는 극사실의 무늬가 다르다고 한다. “서양의 극사실인 경우는 사진을 그대로 이렇게 모사 복사하는, 인간 정신을 배제시킨 거거든요. 생각은 들어갈 여지가 없는 굉장히 개념적인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렸던 극히 사실적인 그림들은 제 생각이 추가되면서 방법적인 게 이제 극히 사실적인 폭로 역할을 하는 거지.” 단순 모사가 아닌 정신의 표상으로 사물들의 극사실성이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 서울 부암동에 자리를 잡은 고영훈 화백의 작업실에서는 달항아리를 옆에 두고 확대경까지 두고 보면서 수만 번의 붓질을 통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든다. 가까이 다가서 아무리 보아도 이건 낡은 도자기, 달항아리다. 낡은 그 세계에서 그는 민초들의 삶, 깨지고 부서지고 사랑받고 상처받고 살아가는 ‘그릇의 인생 히스토리’를 읽어내고, “도자기의 낡음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캔버스에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고영훈 화백의 달항아리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달항아리는 허공을 떠다니며 시공을 넘어선 현실 속에서 편안히 살라 한다.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0945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일보 춘하추동-올해 제주 동백꽃은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