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일보 춘하추동-‘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by 제주일보

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김승종.jpg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기』 ‘오자서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간신의 모함으로 평왕(平王)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 오(吳)나라로 망명한다.



마침내 그는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수도를 함락시키고 이미 사망한 평왕을 무덤에서 꺼내 시신에 300대의 매질을 가했다.



친구 신포서로부터 “그대는 본래 평왕의 신하였는데 그 시신을 욕되게 하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를 어기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질책을 받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도행역시(倒行逆施)’,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를 거스르는 일을 했다’는 뜻이다. 오자서가 일모도원과 함께 도행역시를 언급한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매질을 가하는 ‘굴묘편시(掘墓鞭屍)’가 후세에 ‘통쾌한 복수’보다는 ‘지나친 복수’를 의미하는 말로 주로 쓰이는 것도 오자서의 행위가 정당했다기보다는 도를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모도원이 회자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관련해 긴급회동한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었다”고 자신의 심경을 전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검수완박 관련법을 4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당론을 정했다.



대통령직인수위와 국민의힘, 정의당, 검찰, 대한변협과 민변, 참여환경연대 등이 검수완박 반대 또는 속도조절 등을 이유로 4월 국회 강행 처리가 부적절하다고 반대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172석이라는 절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검수완박’ 법안 국회 통과 및 국무회의 공포를 밀어붙이는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은 간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고, 무턱대고 밤길을 달리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이다.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146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논단-대통령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