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우 제주대학교 교수 실버케어복지학과/ 논설위원
지난 11월 24일 우루과이와의 월드컵 1차전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2002년의 기억과 함께 16강에 대한 기대를 한층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다음 날 모든 언론에서 월드컵 소식이 1면을 장식할 때 서대문구 신촌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슬픈 소식이 조용히 전해졌다.
당시 경찰과 소방은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며 집 현관문에는 5개월치 도시가스 요금(9만2000원) 납부를 독촉하는 고지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 모녀는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4년 일명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이후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며 관련 제도가 정비되었지만 또다시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건이 계속된 것이다. 앞서 지난 8월에도 경기도 수원에서도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암과 난치병,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건이 되풀이되었다.
이들 사건은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음에도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 관할 지자체에서 이들의 사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또한 현재 거주지로 이사를 했음에도 당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서비스 대상자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 16개월분이 체납된 사실을 기존 거주지 관할지자체에 통보했고 직접 주소지로 방문했으나 그곳에 살지 않아 확인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신료 미납으로 인해 연락이 닿지 않는 문제점도 들어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송파 세 모녀사건 이후 일명 ‘세 모녀법’이라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재발 방지 약속과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고 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은 교육급여 외의 다른 영역에서 부양의무자 제도가 그대로 남아 본인이 아무리 수급 대상이더라도 왕래가 끊기거나 부양을 거부하는 가족이 있어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촘촘한 위기가구 발굴을 위해 통신사와 행안부로부터 연락처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보장급여법 개정됐지만 석 달 만에 또다시 신촌 모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점차 부양의무자 제도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고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사후대책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을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에게 모든 몫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게 지자체 수준에서의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때이다.
11월 30일 오영훈도정은 민선8기 다함께 미래로 공약실천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이 중 사각지대발굴과 복지서비스 확대를 위해 제주형 생애주기별 통합돌봄체계(가칭 820센터)와 통합복지하나로 운영 및 사회서비스 확대가 포함되었다. 기존 분절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의 복지전달체계를 제주에 맞게 생애주기별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고 통합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욱 추워지는 날씨에 어디선가는 또다시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 공약실천 계획이 제주도민의 복지체감도 향상과 제주 지역에 맞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돌봄체계가 구축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