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중섭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을 꿈꾸며

by 제주일보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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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애초에는 작은 길이었지만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통행이 증가하면서 점차 폭이 넓어지고 주변을 따라 주거용과 상가용 건물이 들어서면서 거리가 된다. 거리를 나타내는 한자어 ‘가(街)’는 특별한 영역의 큰 거리나 어떤 기념비적인 이름을 표기하면서 붙여지기도 한다. ‘이중섭 거리’는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특별한 거리로서 이미지화된 명칭이다. 그 이름에서 서귀포시 특유의 상징적인 브랜드를 생각해 지어낸 문화도시 전략의 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중섭 거리는 1996년 서귀포시 지명위원회가 지정한 것으로, 1951년 대향 이중섭 화가가 거주했던 서귀포시 정방동 512-1번지에 접한 도로 360m 구간을 말한다. 이중섭 거주지를 중심으로 내리막길 아래쪽의 솔동산 수협사거리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360m를 올라가면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이르는 길이 바로 이중섭 거리다. 한국전쟁 당시 이중섭 화가가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란을 와서 줄곧 왕래했던 이중섭 거리는 전국에서 최초로 화가 이름으로 지정된 거리이기도 하다.



오늘날 예술가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파리의 몽마르트르는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원래 몽마르트르는 파리 외곽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는데 저렴한 집세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예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1884년 작업실을 몽마르트르로 옮겨 그림을 그렸는데 그곳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와 에밀 베르나르의 영향을 받았다. 파블로 피카소는 1901년에 몽마르트르의 카페와 밤의 유흥을 묘사한 작품을 그렸고, 그곳에서 조르쥬 브라크와 알게 되었으며 그와 공동작업으로 입체주의를 창안하였다.



1906년 봄에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에서 이탈리아 미술사를 공부했던 모딜리아니가 몽마르트르로 들어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모딜리아니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앙데팡당전에 작품 6점을 출품해 화가로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당시 모딜리아니와 비슷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모여들었다.



이중섭 거리가 선포된 지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5년 전만 하더라고 한산했던 이중섭 거리에 관광객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고, 지역 상권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98년 제1회 이중섭 예술제를 시작으로 서귀포에서 거리공연 등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중섭 거리에 예술가들이 찾아오고, 이중섭 거리를 오가며 치열하게 작업했던 이중섭의 발자취를 따라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하고, 그들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낭만이 넘쳐흐르면 이중섭 거리는 틀림없이 예술의 명소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이중섭 거리가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예술의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거리의 중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중섭미술관이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발전한다면 이중섭 거리도 몽마르트르처럼 예술의 거리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는 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의 하나로 ‘이중섭 거리 선포 25주년 기념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이중섭 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는지 사진을 통해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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