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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연풍-봄바람이 분다

by 제주일보

현진숙 /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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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어오니 얼마 전만 해도 바싹 말라 죽은 가지 같았던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봄바람이 아무리 들쑥날쑥 불지만 차가운 바람에도 생명을 깨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나보다.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고 땅 속에서도 씨앗들이 깨어나 땅위로 싹을 내밀고 있다. 참으로 신비롭기만 하다.



나에게는 계절마다 주는 위안이 있는데 그중 겨울은 고요함을 주어서 참 좋아한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는 것이 언제나 아쉬움이었는데 올해는 2월이 윤달이라 겨울이 더 길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꽃샘추위와 겨울 추위는 다름을 또 일깨워주고 있다. 춥지만 움츠러들게만 하는 겨울바람과는 다르게 봄바람은 움츠리고 있던 모든 생물들에게 기지개를 켜며 생명을 피워내게 하는 신비가 있다.



그런데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불면 황사도 오고 또 꽃가루 알러지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봄바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분다. 세상이치가 그러하듯 우리가 바라는 것만 있는 세상은 없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보다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들이 더 많아서 때론 꽃조차 바라볼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마음에 작은 미소를 머금게 하는 꽃들과 그리고 모진 추위를 이기고 싹을 내고 있는 가지를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저 가지처럼 우리의 삶에도 싹을 틔울 때가 오겠지 하는 위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견뎌낼 힘이 된다. 지금도 따뜻해지면 불어 닥치는 황사가 시야를 흐리게 만들어 앞이 보이지 않지만 황사가 물러나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깨끗한 세상이 있듯이 때가 되면 살맛나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지 않는가.



오늘도 봄바람으로 곳곳에서 생명을 깨워주는 것을 보며 새삼 나에게는 어떤 생명을 주고 있는지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 봄바람을 맞고 있다. 생명이 있는 가지는 잘 키워야 가을에 결실을 맺게 될 테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은 봄바람이 불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생명을 잘 키워내기 위해 거름도 주고 쓸모없는 가지는 잘라내기에 바쁘다. 우리도 살아 있으니 거름도 주고 또 필요 없는 가지는 잘라주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해가 거듭 될수록 수형이 더 아름다운 나무, 그리고 많은 새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처럼 살아 있는 연한이 더 길어질수록 아름답게 그리고 품을 수 있는 품이 더 넉넉해서 말 한마디에도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결실이 맺어지길 바라며 봄바람을 오늘도 가슴가득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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