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지금, “너와의 모든 지금”이라는 재쓰비의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생각해보니 아마도 꿈 많고 에너지 넘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였을까.
나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있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내가 죽을 리가 없어"라고 확신하던 시절.
현실적인 고민 없이 "나 아니면 누가 성공하겠어"라고 의심 없이 생각하던 시절.
나는 유난히 에너지가 많은 아이였다.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두고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한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태권도 수업 동안 열심히 소리 지르고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멋진 품새를 뽐내고 나서도 매일 다른 학생들과 피구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닭싸움도 하고 그래도 지치질 않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커서 항상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교복에서 체육복으로 갈아 입으면 몸이 너무 가벼워서 뛰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CA시간에 처음 배워본 스쿼시가 너무 재밌어서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시합까지 하다가 1점을 따냈었는데, 안 쓰던 근육을 너무 마음껏 쓴 나머지 다음날 근육통으로 일어나지 못했던 적도 있다. 체육시간에 피구를 할 때에는 여자 아이들이 내 공을 무서워하며 살짝 맞춰달라고 내 앞에 와 기권을 하기도 했다.(웃음) 체육 수행평가로 배드민턴으로 서로 20번 주고받기를 했을 때에는, 내가 몸을 날려 어떻게든 공을 다 살려 내다보니 거의 10명 가까이 되는 반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 상대를 해줬었는데, 그러다 막상 내 수행평가 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그 10명의 친구들이 선생님께 부탁해서 다시 한 번 수행평가를 쳐서 만점을 받은 훈훈했던 기억도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도 열정이 넘쳤다. 수업시간에는 가능한한 제일 앞자리에 앉았고 선생님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이해하려고 집중했다. 수업이 끝나면 잘 이해가지 않았던 부분이나 더 궁금한 부분을 선생님께 꼭 여쭤보러 갔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에게 예쁨도 참 많이 받았다. 친구들이 다 학원에 가 있는 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던 나는 학교 옆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교과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교과서를 너무 많이 읽어서 거의 외우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시험도 거의 만점이었다.
부모님도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먼저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것들이 많았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이 보내서 다니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다니는 태권도, 영어, 드럼, 일본어, 수학 등 그 모든 것이 너무 재밌었다. 결과도 그만큼 나와주니까 칭찬과 인정으로 돌아오는 게 어느새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제일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은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나"는 아니다.
처음 중학교를 들어가 치룬 내신 시험에서 겨우 100등(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던 건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수업에 워낙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보니 반 아이들 모두 내가 당연히 공부를 엄청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시험 성적이 나오고나서는 다 나에게 몇 점인지 몇 등인지를 물어봤었는데, 그거에 비해선 한참 떨어지는 등수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했던 책들에서 수없이 얘기했던 "열심히 하는 과정"의 가치를 믿었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다면, 내가 나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면, 나는 잘한 것이다. 나는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면서 늘 생각했던 건, 비록 결과가 원하는만큼 나와주지 않더라도 "열심히" 한 것만큼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참 요령이 없이 시간을 아~주 많이 들여 도서관에 가장 오래 앉아 있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시험 범위를 다 끝내고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 때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면서 가위에 눌린 것도 참 여러 번이었던 것 같다.(이때부터 탈모가..) 그래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는 어느새 반에서 1~2등까지 올랐고 목표했던 점수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는 수험에 대한 압박으로 점점 공부에 대해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 수능을 망쳤고, 평소 성적보다 훨씬 못 미치는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지만 더 이상 압박을 느끼면서 하는 공부가 싫어서 재수는 포기했다. 그래서 원하는 학교의 분교로 들어가는 것에 그냥 만족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열정의 날개가 꺾였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공부에 자꾸 요령을 피우게 되었다. 재수를 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갔었다면 달랐을까.
학창시절 나는 첫인상이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보인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아직 어려서 호불호도 강하고 솔직하고 철없이 거만했던 부분도 있다. 소위 좀 '나대는' 경향이 있었다. 감성적으로 충만하던 싸이월드 시절, 수많은 시와 노래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많이 깎이고 깎여 사회성은 많이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나댈 수 있는' 자신감은 없어진 것 같다. 나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눈치 보며 안 하게 되었고 싸이월드와 Facebook에 올렸던 수없이 많은 나의 경험과 도전의 발자취를 남기는 일도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면서 안 하게 되었다.
그 때의 에너지와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돌아보면 참 빛나던 순간들..
타지생활과 야근을 하며 건강도 나빠지고 우울증도 겪었던 이후로 나는 어릴 때만 있었던 반짝거림을 완전히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혹자는 나를 실제로 보면 여전히 자신감 넘치고 당당해보인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스스로는 안다. 내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현실적인 고민과 압박에 쫓겨 불안함과 자기혐오를 안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음을.
아 그 때의 샘솟던 에너지와 자신감이 그립다.
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고 뭐든지 진심으로 열심히 했던 내가 그립다.
내 자신을 참으로 자랑스러워하던 그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