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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Nov 23. 2023

바르샤바

폴란드

첫째 날

문화과학궁전 - Skaryszewski Park - 바르샤바대학 도서관

 뮌헨 공항 근처 prizotel에서 6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체크아웃을 했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제는 늦게 도착해서 가지 못했던 슈퍼마켓에 갔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맥주 캔을 잡았지만, 다시 손을 놓고 샌드위치와 우유만 사들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먼저 우유를 마셨는데, 자칫 뿜을 뻔했다. 일반 우유보다 더 달고 밀도가 있었는데, 번역해 보니 연유였던 것이다. 혹여 탈이 날까 인터넷에 찾아보았는데, 다행히 그냥 마셔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샌드위치랑 같이 다 마셔버렸다. 살짝 찝찝한 기분을 앉은 채, 아무튼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가서 무사히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175번 버스를 타고 바르샤바 시내에 도착하니 삼성 광고가 나를 반겨주었다. 특히 내 플립4가 엄청 반가워한 것 같았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 점심을 먹었다. 외국 식당에 혼자 들어가 본 경험이 아직 없었기에, 그나마 익숙한 아시아 식당에 가고자 했다. 정갈해 보이는 일식집을 발견하여 잠깐 고민하다 들어갔다. 점심 초밥 세트를 주문하자, 곧바로 녹차와 샐러드, 미소된장국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나라를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그 미소된장국은 벌써 내게 감동을 주었다. 보통 미소된장국과는 다르게 굉장히 진해서 우리나라에서 먹던 된장국이 바로 떠올랐을 만큼 내 입맛에 완벽히 맞았다. 불현듯 여기에 밥을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얼마 뒤 초밥 10조각이 나왔는데, 그중 6조각은 내가 알던 초밥이 아니라 회가 들어있는 김밥이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아침으로 먹은 샌드위치와 우유(?) | 바르샤바 중앙역에 게시된 삼성 광고 | 식당 Akashia에서 주문한 점심 초밥 세트

 점심을 먹고 나서는, 환율을 잘 쳐주기로 소문난 TAVEX 환전소로 가서 50유로만 환전한 뒤 문화과학궁전으로 향했다. 32층으로 매우 높은 만큼 시내 어디에서도 이 건물을 찾기는 쉬웠지만, 건물 안 매표소를 찾는 데에 꽤 애를 먹었다. 건물 안팎을 두 바퀴 정도 돈 끝에 겨우 매표소를 찾아 표를 사서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은 나름 예뻤으나―사실 경치가 안 예쁜 전망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20즈워티나 주고 가기에는 조금 아까웠다. 유럽의 구식 건물들은 거의 없고 높은 빌딩들이 주로 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건물 밖에서 중앙역 등 신식 건물들과 어우러져 있는 이 궁전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다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혼자 다니는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이번 폴란드 여행은 전부 에어비엔비에서 개인실을 예약했다. 바르샤바에서 쓴 숙소는 3명이서 하나의 플랫을 쓰는 형식이었다. 내 방이 꽤 널찍해서 짐을 펼쳐놓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까지에는 시간이 한참 남아 Skaryszewski Park와 바르샤바대학 도서관에 다녀왔다. 이 공원 도시 속의 숲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커 보였다. 넓은 보도를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양 옆으로 나무들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었다, 동물들도 많았다. 공원 중앙에 있는 큰 호수에는 오리와 거위가 나른하게 떠다니고 있었고, 귀여운 다람쥐는 못 봤지만 징그러운 쥐는 볼 수 있었다. 햇살도 따스해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바르샤바대학 도서관에 갔다. 외관이 상당히 독특해서 인상적이었다. 건물의 외벽은 칙칙한 초록색이었는데, 그 일부분을 덩굴식물들이 뒤덮고 있었다. 건물 뒤편은 마치 작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벽에 유리도 많고 식물들도 무성하며 심지어 유리로 된 돔까지 있다 보니, 이 뒤뜰에서 보면 마치 이 건물은 도서관이 아니라 식물원 같았다.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뒤뜰은 공부하다 지칠 때 건물 옥상에 올라가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창을 통해 나 대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뿌듯이 지켜보다 배가 고파져 숙소로 돌아왔다.

Skaryszewski Park 중앙에 있는 평화로운 호수 | 바르샤바대학 '도서관' 뒤뜰에서 찍은 사진

 맛집을 전혀 찾아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숙소에 와서야 주변에 어떤 식당이 있나 찾아보았다. 일단 폴란드에 왔으니 폴란드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폴란드 전통음식점 위주로 검색했다. 구글맵 평점이 좋은 GOŚCINIEC이라는 식당이 숙소 맞은편에 있길래 바로 들어갔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구석진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펼쳤는데, 딱히 끌리는 음식이 없었다. 결국 뭔가 낯익어 보이는 크레페와 Zywiec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직원이 소스와 고기 종류를 물어보길래 가장 인기 있는 걸로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매우 후회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크림소스 크레페가 나왔는데, 너무 느끼했다. 맥주를 같이 시켜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절반도 못 먹고 남길 뻔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첫 유럽 음식인 만큼 다 먹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 작은 그릇을 비우는 데에 과장 보태서 30분은 걸렸는데, 그동안 노을을 감상했다. 도로 양쪽에 쭉 늘어선 파스텔 톤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 보이는 분홍색 하늘 덕에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었다.

목이 말라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맥주를 절반이나 마셔버렸다 | 소화시키면서 바라본 바르샤바 도심의 일몰

 식당을 나와서는 마트에서 면도기와 맥주 2캔, 물, 과자, 바나나를 사 왔다. 이렇게 샀는데 원도 나올 만큼 물가는 저렴했다. 과자를 안주로 Okosim 맥주를 마시며, 나 혼자만 혼란스러웠던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 어디를 갈지 계획한 후 잠에 들었다.


둘째 날

Saxon Garden - 쇼팽 박물관 - 마리 퀴리 박물관 - 바르바칸 - 바르샤바 왕궁 - Observation Deck

 전날 밤 샤워를 하면서 내가 샴푸를 뮌헨에 두고 왔다는 사실―유럽에 온 첫날부터 무언가를 분실한 셈이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숙소 옆 마트에 가서 샴푸를 사 왔다. 아침 8시쯤이라 그런지 출근 또는 등교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그들은 나 같은 한량을 무어라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머리를 감고 숙소에서 나와, 9시에 무명 용사의 무덤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Saxon Garden로 갔다.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파스텔 톤 건물들과 작은 궁전들을 비추어 가는 길은 너무 예뻤다. 이 날씨에 이 거리를 걸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을 여행자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가다 보니 딱 9시에 도착하여 간신히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매우 간소한 교대식이 끝나고, 정원을 거닐었다. 어제 갔던 공원보다 훨씬 작지만, 조각상들과 추모비들도 있어 정갈했다.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과 참 잘 어울리는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axon Garden으로 가는 길에 찍은 사진 | 자세히 보면 무명 용사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을 볼 수 있다

 이후 대통령궁과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동상을 지나쳐 쇼팽 박물관에 갔다. 쇼팽에 관하여는 그의 야상곡 '녹턴'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박물관은 지루했다. 우연히 내가 간 기간에 한국 음악 전시관이 작게 열려서 나를 반겨준다는 망상도 해보았다. 점심으로는 Aioli에서 브런치―이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치였다를 먹었다. 소시지와 계란프라이, 샐러드, 빵 등이 나와서 다 맛있게 먹었다.

 잠시 숙소에 들렀다 다시 나와 구시가지로 갔다. 신시가지보다 더 예뻤다. 작은 광장을 구식 건물들이 둘러쌌고, 중앙에는 뮤직박스와 함께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감상은 이따 더 하기로 하고 더 북쪽으로 가서 마리 퀴리 박물관으로 갔다. 진성 이과지만 과학을 싫어하는 나로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마리 퀴리의 연습장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전자를 나타내는 e와 전압을 나타내는 V 등의 기호가 쓰인 등식들을 보고, 내가 썼던 수식과 기호들이 예전에도 그대로 쓰였다는 당연한 사실에 놀랐다. 그다음 갈색 벽돌로 지어진 웅장한 성벽인 바르바칸을 지나 왕궁으로 갔다. 시내에 강을 따라 중세 성벽이 보존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왕궁을 보고 Observation Deck에 가서 드넓은 광장을 천천히 음미했다. 빌딩이 없어서 그런지, 어제 문화과학궁전 전망대에서 보았던 전망보다 훨씬 예뻤다. 내려와서 9즈워티짜리 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저녁을 먹으러 숙소 근처로 갔다.

나도 고등학생 시절에 저런 수식을 꽤나 썼었을 것이다 | Observation Deck에서 바라본 Castle Square

 어제저녁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또 다른 폴란드 전통음식점에 갔다. 이번에는 Zapiecek이라는 식당에 가서 돼지 발목과 Ksiazece 한 잔을 주문했다. 족발의 냄새가 났는데, 껍질은 너무 딱딱했고, 살코기는 값싼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처럼 퍽퍽하고 냄새가 많이 났다. 결국 오늘도 꾸역꾸역 다 먹어내며 어제의 실패를 또 겪었다. 소화를 시킬 겸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한참을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역시 해가 지는 도시의 광경은 참 아름다웠다. 내일은 아침 일찍 자코파네로 가야 했기 때문에 맥주를 더 마시지 않고 바로 취침했다.

 처음에 올 때는 혼자 여행을 다닌다는 것에 많이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맞닥뜨려보니 위험한 일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쉬고 싶을 때는 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만 아직 유럽의 문화를 잘 몰랐기 때문에 긴장했던 때도 이따금 있었다. 특히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할 때가 가장 떨렸다.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때 자리를 잡는 것. 종업원을 직접 부르지 말고 눈빛으로 신호를 주는 것, 음식이 나오고 몇 분 뒤 다시 와서 음식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는 것. 이틀 동안 무려 식당 4곳을 가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또 혼자 걷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어떤 장면을 보더라도 내 생각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부분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는 점, 식사할 때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앞으로 한 달 동안 혼자 망상하는 능력이 크게 발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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