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츠윌리엄 다아시 Dec 01. 2023

크라쿠프, 자코파네

폴란드

첫째 날

타트라 국립공원 - 모로스키에 오코

 크라쿠프 중앙역에서 9시까지 동행을 만나기 위해 5시 30분 기차를 타야 했다. 그러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났는데, 너무 피곤해서 크라쿠프로 가는 내내 잤다. 그 넓은 기차역에서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동행을 만났다. 시간이 촉박해 바로 자코파네행 버스로 달려가 표를 끊고 탑승했다. 버스에 타고나서부터는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며 1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 한국을 뜬 지 겨우 사흘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과 한국말로 대화한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행은 나랑 동갑이었고 어느 한인민박에서 스탭을 하고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그녀 덕분에 재밌게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몰려와 또 잠에 들었다. 거의 정오가 되어서야 자코파네에 도착했다. 내 짐을 맡기고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는데, 피자는 맛있었지만 파스타는 소스만 괜찮고 면 상태가 툭툭 끊어져 별로였다.

 자코파네 시내에서 타트라 국립공원까지 가는 데에는 또 버스를 30분 정도 타야 했다. 이 버스를 타는 곳을 찾는 데에 꽤나 애를 먹었다. 버스 터미널처럼 생긴 곳이 2곳 있었고, 도로 중간중간에도 버스들에 있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15시가 다 되어서야 공원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는 걸어서 올라가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마차―올라갈 때는 무려 90즈워티나 내야 했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2마리의 튼실한 흑마가 등을 마주대고 앉는 형식의 긴 마차를 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의 마차가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마차가 가는 방향을 보고 앉으면 좌우로 경치를 볼 수 있지만, 옆을 보고 앉으면 반대편의 경치를 못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오른쪽을 보고 앉았는데, 도로가 산을 시계방향으로 타고 올라가는 구조라 반대편의 탁 트인 경치는 뒤를 완전히 돌아야지 볼 수 있었다.

가파른 산을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말들 | 경치는 참 예뻤지만 감상하기 쉽지는 않았다

 1시간 정도 마차를 타고 가니 산 중턱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여기서부터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모르스키에 오코라는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의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돌길 양옆으로 이어진 푸른 나무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들, 그리고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까지 내 주위가 온통 병풍으로 둘러싸인 느낌을 받았다. 이러니 시간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멈추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호수를 맞이했을 때는 입이 딱 벌어졌다. 여태 본 강과 호수의 물들 중 가장 맑았다. 너무 투병해 물밑 바닥이 선명히 보였고, 주위의 나무들에 의해 호수 중앙은 에메랄드 색이 났다. 동행과 서로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한참을 감상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수를 떠났다. 마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날이 조금 서늘해졌다. 우리를 등지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숫노루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자코파네 시내로 돌아갔다.

모로스키에 오코로 올라가는 길 | 매우 맑은 호수와 뒤를 받쳐주는 숲과 돌산 | 가운데 자세히 보면 숫노루가 보인다

 시내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돌산에는 분홍빛이 비쳤다. 크라쿠프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 버스가 있길래 일단 거기로 가보았다. 크라쿠프행 버스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못 탈 거 같아 매표소로 가서 다음 버스가 언제인지 문의해 보았다. 무려 2시간 뒤에 출발한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동행이 자정에 프라하로 돌아가는 야간버스를 타야 해서 지금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버스에 탔는데, 좌석은 이미 다 차서 2시간 넘는 시간을 통로에 서서 갔다. 초반에는 통로에도 사람이 꽉 차서 서서 가다가 점점 사람이 빠져서 막판에는 그래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2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크라쿠프 시내에 도착했다. 저녁을 못 먹었기 때문에 둘 다 너무 배고픈 상태였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구시가지 안에 있는 Moaburger라는 식당에 갔다. 동행이 저장해 둔 맛집 목록 중 하나였는데, 덕분에 맛있는 수제 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버거를 먹기 전부터 의자에 앉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단순히 배가 고프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비트와 파인애플 등 다채로운 채소와 두꺼운 패티가 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배를 채우니 또다시 잠이 몰려왔다. 동행과 작별 인사 후 바로 숙소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다. 짐은 대충 던져놓고 일단 화장식 욕조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내일도 일정이 바쁘기에 바로 침대 속에 들어갔다.


둘째 날

수키엔니체 - 성모 승천 교회 - 바르바칸 - 바벨 대성당 - 유대인 거리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

 항상 여행을 다니면 사라지는 것이 하나 있다. 늦잠. 아무리 전날 매우 힘들었어도 귀신같이 일찍 잠에서 깬다. 오늘도 역시 일찍, 8시로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에 깨버렸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나와 Zabka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구시가지를 둘러싼 공원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내일까지 같이 다니기로 한 동행을 11시에 만나기로 해서 그전까지 구시자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처음'의 효과 때문인지 바르샤바 때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게 벌써 익숙해졌나? 수키엔니체를 둘러싼 Rynek Główny 말고는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을 다시 봤을 때야 크라쿠프가 더 예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칸 주변 Swatch 매장에서 120즈워티를 주고 시계 스트랩을 새로 사서 갈아 끼운 뒤, 성모 승천 교회 앞에서 동행을 만났다.

딱 보고 궁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수키엔니체 | 바르바칸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새로운 동행은 독일에서 교환학생 중인 누나였다. 처음부터 바로 말 놓고 편하게 대화하자고 해서 매우 좋았다. 나는 몰랐는데, 남쪽에 유대인 거리도 유명하다 하여 구시가지 북쪽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동행은 이미 독일에서 6개월 정도 지내온 경험을 토대로 독일 생활에 대한 여러 꿀팁과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말해주었다. 덕분에 학기 시작 후 뮌헨에 수월하게 적응하고 여행도 더 효율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유대인 거리로 가기 전에 바벨 성에 들렀다.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규모는 그 이상이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내부가 썩 인상 깊지는 않았다. 지그문트 종을 보러 좁은 탑을 통해 올라갔는데, 먼저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그 거대한 종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 만지지는 않고 도시 전망만 슬쩍 보고 다시 내려갔다. 성 밖으로 나가서 청명한 하늘 아래 있는 성을 다시 보니 예뻐서 동행과 서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후 더 남쪽으로 가서 유대인 거리를 돌아다녔다. 유대인 거리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깔끔한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성벽들로 이루어진 구시가지와는 다르게, 돌벽에 낙서도 많고 지저분했다. 어떤 유대인 회당이 보여 들어가 보려 했으나, 입장료를 걷길래 들어가지 않고 바로 점심을 먹을 식당을 둘러보았다. 구글맵도 활용해 평이 좋은 Plac Nowy 1에 갔다. 피자 하나와 파스타 하나를 주문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는데 당혹 네 종류의 치즈가 들어간 피자와 치즈 파스타를 가지고 오는 종업원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음식에 대한 설명이 폴란드어로 되어 있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다 먹기 위해 음료를 한 잔씩 추가로 주문하여 그 느끼함을 중화시키려는 노력도 했지만, 피자 3조각에 파스타는 절반을 남긴 채로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빨간 벽돌 지붕과 노란색 파스텔 외벽은 내 최애 조합이다 | 성밖에서 강 너머로 보이는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다음 일정은 가장 기대하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이었다. 크라쿠프 중앙역으로 가서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식 발음이 오슈비엥침이라고 한다으로 가는 열차 SKA3에 탔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오시비엥침 역에 내려서도 버스도 타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제2박물관에 도착했다. 제1박물관은 16시 이후―9월이 이렇고 매달 다르다고 한다부터 입장료가 무료고, 제2박물관은 항상 무료이기 때문에 제2박물관을 먼저 갔다. 제2박물관은 철도 양쪽으로 나란히 있던 수용소의 터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십여 가지의 언어로 적힌 비석을 마련해 두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버티며 비석까지 갔다 제1박물관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제1박물관에 도착하니 어느새 입장 마감 15분 전이 되어버렸다. 제1박물관은 제2박물관과 다르게 수용소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내부를 개조하여 각 건물마다 테마별로 당시 희생자들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희생자들의 옷과 신발, 나치에게 빼앗긴 여러 금속 물건들, 잘려나간 머리카락, 그들이 생활하던 비좁은 방 등 정말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용자들을 학살하는 데에 이용되었던 가스실과 그 옆에 교수대가 있었다. 가스실 옆 교수대에서 소장 루돌프 회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선뜩해졌다.

푸르른 벌판 위에 중간중간 지옥의 터가 남아있다 | 루돌프 회스의 최후처럼 쓸쓸히 방치된 회스의 교수대

 노을을 바라보며 역으로 다시 돌아갔고, 1시간을 기다린 끝에 크라쿠프로 돌아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느끼함 때문에 점심을 많이 먹지도 못했고, 먹은 지도 너무 오래되어 엄청 배고팠다. 그래서 크라쿠프에 도착하자마자 House of Beer라는 호프집에 가서 맥주와 함께 버펄로 윙을 먹었다. Forest IPA를 마셨는데, 내가 기대했던 IPA와 달리 홉향보다는 레몬향이 더 강해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너무 배고파서 금방 다 마셔버렸다. 점점 배가 차서 그런지 너무 졸려 대화를 하다가도 눈을 계속 껌뻑거렸다. 어느새 23시가 넘기도 했고 이날 총 4만 보 가까이 걸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음식을 얼른 먹어 치우고 밖으로 나와 동행과 헤어졌다. 어제보다도 더 피곤해 숙소로 돌아와서는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안겼다.


셋째 날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 Brine Graduation Tower

 Zabka에서 산 빵 두 쪼가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Jubilet 버스 정류장에서 어제 같이 다녔던 누나와 만나 304번 버스를 타고 비엘리치카로 갔다. 이 날 일정은 딱 하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었다. 미리 예약한 투어—Miner's Route는 문자 그대로 광부 체험이라는 말을 듣고 Tourist Route로 선택했다—는 10시에 시작했다. 지하 광산이기에 처음에 30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니 꽤 서늘해서 플리스를 걸쳤다. 그렇게 1시간 넘게 가이드를 따라 광산을 쭉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매우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의 발음이 '독일식'이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결국 설명을 귀담아듣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광산은 정말 잘 꾸며놓았다. 당시 광부들이 일을 했던 장면을 직접 인형으로 표현해 놓았고, 과거에 사용했던 도구들도 전시해 두었다. 또 생생한 광부 석상들과 묘지들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중간에 더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어두운 조명과 암석으로 된 벽으로 둘러싸인 통나무 계단은 실제 광부들이 썼을 법하게 생겨서 살짝 으스스했다. 후반부에는 큰 성당도 있었다. 중앙에 샹들리에들도 달아놓아 위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나오기 전에 이곳에서 생산된 후추 소금을 한 병 샀다. 뮌헨 가서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애용할 생각에 설레었다. 다시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계속 덜컹덜컹거리고 문과 벽도 공사장 엘리베이터마냥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나름 스릴 있었다.

보자마자 드워프가 떠올랐다 | 이 계단을 타고 내려올 때 동굴을 탐험한다는 느낌도 순간 들었다 | 무채색임에도 화려했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동화 같은 마을이 보였다. 칙칙한 회색 암석만 보다가 푸른 들판과 빨간 지붕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Graduation Tower에 들러서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구글맵 평점이 무려 4.8이나 되면서 가격대도 괜찮아 보이는 Sztolnia Wieliczka라는 식당을 찾아 망설임 없이 거기로 갔다. 나는 사과와 체리 소스로 덮인 오리 가슴살, 동행은 수제 버거를 주문했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고른 식당 중 단연 최고였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리고기 자체도 맛있었는데, 처음 시도해 보는 사과 체리 소스랑도 매우 잘 어울렸다. 게다가 이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500mL도 시켜 마셨는데, 엄청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라거답게 정말 깔끔해서 좋았다. 그리고 오리고기와 맥주 1잔에 50즈워티도 안 되어서 이 식당을 나갈 때도 만족스러웠다. 딱 아쉬웠던 점 한 가지는 내 뮌헨행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2시간 정도밖에 안 남았어서 여유롭게 대화하며 먹지 못하고 일찍 나와야 했던 점이다.

광산에서 답답하다 느낀 적은 없었지만, 맑고 푸른 공원에 오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 하나부터 열까지 만족스러웠던 식당

 빠르게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타고 다시 Jubilet 정류장으로 갔다. 여기서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이틀 동안 열심히 걸어 다닌 동행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쉽게도 다음 버스가 금방 와 나중에 독일에서 보자는 인사를 급하게 한 뒤, 나는 공항으로 떠났다. 다행히도 탑승 마감 시각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빠르게 게이트로 가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이번 크라쿠프 여행을 되돌아보는데, 건물들과 풍경도 참 예뻤지만 무엇보다 같이 다녔던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 더 재미있고 행복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부터는 또 혼자 다녀야 하는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동안은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한다는 것만 기대했는데, 이때부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대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샤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