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44분 기차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나서 짐을 싸고 집에서 나왔다. 나흘 치 짐이 들어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중앙역에 힘겹게 도착한 뒤 전광판을 봤다. 아니 이럴 수가. 탈선으로 인해 기차가 취소되었다. DB 어플을 확인해 보니 2시간 뒤에나 열차가 있었다. 고객센터에 가서 더 빠른 열차가 있는지 물었지만, 2시간 뒤 기차를 타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2시간 동안 중앙역에 멍하니만 있을 수도 없고 집까지 겨우 10분 거리—역시 Adelheidstraße 만한 기숙사는 또 없다—였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30분 정도 눈을 붙였다 다시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에 탔다. 여전히 피곤해서 기차에서 책은 몇 페이지 읽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해 보니 14시가 넘어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숙소로 갔다. 내가 묵은 숙소는 한인민박 도브리프라하다. 물론 민다 평점이 좋은 것도 하나의 선택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전에 자코파네에서 동행했던 친구, YJ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가 내게 프라하에 오게 되면 꼭 자기네 숙소에 오라고 했던 약속을 나는 잊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YJ가 반겨주었다. 자코파네에 갔던 것도 거의 2달이 다 되어서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같이 다녔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그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짐을 내 침대에 놓고 숙소 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녀는 아직 근무 중이라 이따 밤에 다시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바로 숙소에서 나왔다.
날이 우중충하고 시간도 애매해서 아예 남쪽에 떨어져 있는 비셰흐라드로 갔다. 트램을 타고 내려가니 주택가에 도착했다. 주변에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가 있었고, 반대편에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Lidl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들고 비셰흐라드로 갔다. 요새는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성문을 지나 들어가 보니 성당과 공동묘지, 정원 등 마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었다. 건물들을 둘러보고 성벽 위로 올라가 요새 밖을 바라보았다. 광활한 블라바 강과 그 건너에 빨간 지붕으로 덮인 주택들이 보였다. 하늘이 맑았으면 더 예뻤겠지만, 흐린 구름에서 이슬비까지 아련한 가을 느낌을 풍겼다.
주택가 바로 옆에 그보다 더 높은 성벽이 있는 게 참 신기했다 | 푸른 잎과 노란 단풍, 빨간 지붕이 조화롭게 다채로웠다
시내로 다시 돌아갈 때는 걸어서 갔다. 걷다 보니 그새 비가 그치고 날도 개었다. 확실히 중심가와 떨어져 있다 보니 한적한 것이 유럽의 평범한 마을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시내에 들어서니 사람도 많아지고 주변 소음도 커졌다. 그게 싫어서 강가로 내려가 혼자 고상한 척 강을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달리기를 하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 개점을 준비하는 식당 등을 지나치며 해가 뉘엿뉘엿 지는 하늘을 감상하였다. 강가에서 도심으로 올라오니 다시 북적거렸다. 심심찮게 한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다 개면서 해가 지니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 | 프라하의 트램에도 광고를 단 농심은 역시 월클이다
동행과 만나기로 한 18시에 딱 코젤로브나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동행 분과 같이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가니 쉰 살 언저리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며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스비치코바와 포크립을 주문했더니, 어눌한 발음으로 "흑맥주? 생맥주?"라 되물었다. 그의 유창한(?) 한국말에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흑맥주 2잔을 달라고 했다. 코젤 양조장의 직영점인 만큼 손님이 많기도 했지만, 한국인의 비중이 꽤나 높았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 인기나 가격에 비해서는 아쉬웠다. 하지만 흑맥주는 정말 일품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코젤 흑맥주 캔을 맛있게 잘 마셨는데, 현지 코젤 흑맥주는 맛이 훨씬 더 풍부하고 진했다. 귀국하면 코젤 흑맥주 캔을 다시 맛있게는 못 마실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흑맥주 하나 때문에—한국말을 잘하는 종업원 아저씨는 덤—이 음식점이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하고 카를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유명한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하였다. 그 명성을 증명하듯, 스톡홀름의 야경보다도 더 멋있었다. 서쪽으로는 프라하 성이, 동쪽으로는 여러 탑과 성당이 도시를 빛내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는 또 정겨운 아코디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괜히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제목이 나온 게 아니었다. 아무 감정 없는 여사친과 단둘이 거닐더라도, 분명 다음날에는 그녀와 연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태 마셔본 흑맥주 중 단연 최고였다 | 고풍스러운 카를교와 반짝이는 프라하성
동행과는 내일 저녁 먹을 때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시내를 질러 숙소로 돌아갔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로비에 나와 YJ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동행했던 그날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해꾼이 나타났다. 같은 방을 쓰는 말 많은 형님—장교 생활을 하다 전역했다고 한다—이 내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전날까지 남자 도미토리에 이 분 혼자 남자 도미토리를 쓰고 있어서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그의 대화에 계속 맞추어 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래도 덕분에 다음날 아침에 있을 스카이다이빙에 대한 두려움이 싹 잊혔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내일 하늘에서 뛰어내리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걱정이 머릿속을 메우고 있었지만, 그보다 피곤함이 더 커서 금세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스카이다이빙 - 카를교 - 스트라호프 수도원
프라하는 스카이다이빙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다소 뜬금없는데, 경치가 예뻐서가 아니라 가격이 싸서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 옵션만 해도 60만원이 넘는데, 프라하는 40만원 밑으로도 체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자코파네에서 YJ에게 들은 뒤 프라하에 가면 꼭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이번 프라하 여행은 엿새 전에야 계획해서 급하게 간 것이다. 프라하에 언젠가 가겠지 하고 별생각 없이 지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11월이 되면 스카이다이빙 영업을 종료한다는 글을 보고 서둘러 예약을 10월 말로 잡았다.
그 스카이다이빙을 이 날 오전에 하게 되었다. 8시까지 집합 장소로 가야 해서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무려 수육이었다고 한다—을 먹지 못하고 나왔다. 벤에 나를 포함하여 6명의 한국인 손님이 탔다. 30여 분을 타고 가 근교에 있는 비행장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다. 카운터에 가니 손님들의 이름이 화면에 쭉 써져 있었고, 나를 포함한 3명이 첫 번째 비행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스카이다이빙에 대한 생각을 뇌에서 아예 배제해 버림으로써 두려움을 강제로 없앴지만, 화면에 쓰인 내 이름을 딱 본 순간 더 이상 배제할 수가 없었다. 착장실에 가서 교육을 받으며 비행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나마 우스꽝스러운 강렬한 주황색 옷 덕분에 긴장감이 조금 사그라져 들었다.
얼마 뒤 준비가 끝났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태울 경비행기를 향해 걸어갔다. 내 뒤에 묶여 같이 떨어질 전문가와 내가 뛰어내리기 직전에 먼저 뛰어내려 나를 찍어줄 카메라맨도 같이 왔다—가장 높은 옵션인 C코스에 포함된 것이다. 카메라맨은 경비행기에 걸어가는 것부터 찍기 시작했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이때부터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는데, 억지로 웃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탄 경비행기는 부실해 보였다. 조종석에 1명이 앉고, 그 뒤에는 컨테이너마냥 텅 빈 공간에 9명이 타니 꽉 찼다. 이륙도 불안했다. 덜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잡는 데에 꽤나 애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태연한 척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목표 고도까지 다 올라가고, 문이 딱 열리고 거센 바람이 비행기 안을 들이닥친 순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정말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낙하산이 고장이 나면 어떡하지? 에휴, 인생 뭐 있나.'
앞에 두 사람이 먼저 뛰어내렸다. 아니 정확히는 뛰어내려졌다. 손님은 전문가 어깨로 고개를 젖혀야 했고 그 상태로 전문가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곧바로 내 순서가 왔다. 카메라맨이 먼저 나가 비행기 문 옆에 매달려 있었고, 나는 무기력하게 전문가에게 기대고 있다 보니 어느새 문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다 하기도 전에 떨어졌다. 정말 말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유사 자유낙하운동의 주체가 된 나는 (mg-kv)/m의 가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에 가해지는 압박감은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세고 길었다. 웬만해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나도 무서워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어느새 조금씩 안정되었다. 종속도에 도달하니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바람에 맞서며 구름과 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카메라맨을 향해 인사도 하고 다양한 손짓도 해보았다. 현실 같지 않았다. 대기 속의 어느 한 분자처럼, 나도 대기 속에서 외부의 힘을 받지 않은 채 존재했다.
아쉽게도 유사 자유낙하 시간이 너무 짧았다. 거대한 지구와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누어 볼 찰나에 낙하산이 확 펴지면서 몸이 뒤로 밀려났다. 마치 누가 위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이후는 패러글라이딩이랑 큰 차이가 없었다. 뱅글뱅글 돌다 착륙 지점에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안정적으로 착륙하는 데에 실패했다. 크게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한 20m는 밀려났다. 착륙장에 있던 직원들이 급하게 달려와서 괜찮나고 물어보았다. 뒤에 전문가가 있어 나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전문가도 애써 아무 문제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무사히 살아남았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음 조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람이 세져서 남은 스카이다이빙 일정을 다 취소했다는 것. 나머지 3명을 포함하여 뒤에 추가로 온 사람들도 다 취소되었다. 찝찝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벤을 타고 돌아올 때 분위기가 많이 어색했다. 덕분에(?) 흥분되어 있던 내 마음도 금세 가라앉았다. 운이 참 좋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떨어진 때 너무 무서워서 뒤에 바짝 기댔다 | 종속도에 도달한 뒤로부터는 거센 맞바람과 프라하의 경치를 즐겼다
프라하에는 그럴싸한 이유 없이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굴뚝빵. 다른 나라에서 많이 팔기도 하고, 프라하의 전통이 깃든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모든 관광객이 한 번씩 먹는데, 안 먹어볼 수는 없었다. 딱 한 번만 먹을 거 제대로 먹기로 마음먹었다—사실 점심을 이 빵 하나로 해결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안에 바나나와 누텔라를 넣고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굴뚝빵을 하나 사들고 강가로 갔다. 날이 화창해 현지인처럼—굴뚝빵을 사 먹는 것 자체가 관광객이긴 하지만 말이다—강가를 따라 여유롭게 걸었다. 밤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건물들의 진짜 모습과 그 모습이 흐물흐물 비친 강은 너무 아름다웠다.
밤에는 볼 수 없었던 안락함이 느껴졌다 |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따뜻하고 바삭한 빵, 누텔라와 바나나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다
카를교를 건너 서쪽으로 갔다. 원래는 오후 내내 프라하 성을 돌아볼 계획이었지만, 하필 이날 독립의 날 행사로 인해 입장이 제한되었다. 하는 수 없이 프라하 성은 다음날로 미루고 더 가면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갔다. 당연히 수도원 그 자체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맥주,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가 궁금해서 갔다. 딱히 배고프지도 않고 돈도 아낄 겸 음식 없이 맥주만 1잔 주문했다. 내 인생 첫 수도원 맥주로 IPA를 마셨다. 맛은 물론 좋았지만, 다른 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조금 아쉬웠다.
무난 무난했던 IPA |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 언덕에서 바라본 프라하 전경
시내로 돌아오면서 프라하 성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어제 같이 다녔던 동행과 다시 만났다. 커피보다는 뷰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경치를 바라보는 모습을 서로 찍어주다 저녁을 먹으로 Pork's로 갔다. 흑맥주는 전날 마셔보았기 때문에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려다, Half-and-half라는 특이한 맥주를 발견하고 이것을 각자 1잔씩 시켰다. 처음 나왔을 때는 이름의 의미가 거품 반 맥주 반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품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품은 줄어들고 검은 부분이 늘어났다. 정말 맛있었다.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진한 흑맥주와 비교적 밍밍한 필스너를 합치니 조화로웠다. 음식은 꼴레뇨 하나만 주문했는데, 이 또한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내가 원래 상상하던 슈바인학센의 느낌을 꼴레뇨가 주었다. 영국 정원에서 먹었던 슈바인학센은 겉은 딱딱하고 속은 퍽퍽하고 느끼했지만, 이 꼴레뇨는 말 그대로 겉바속촉이었다. 여태 유럽에서 간 식당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해 질 녘 프라하 성 스타벅스에서 바라본 프라하 전경 | 집에서 나도 한 번 Half-and-half 맥주를 직접 만들어 마셔볼까?
저녁을 먹고는 소화도 시킬 겸 같이 야경을 더 둘러보다 헤어졌다. 이미 전날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우리 방에 사람이 1명 더 생겼다. 전날 내게 말을 많이 걸었던 형님은 이번에는 그 새로운 손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내가 피곤한 티를 팍팍 내비치기도 했다. YJ와 간단하게 내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방에 들어가서 바로 잤다.
셋째 날
프라하 성 - 레트나 공원 - 프라하 천문 시계 - Riegrovy sady
전날과 달리 느긋하게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뮌헨에서 간간이 볶음밥이나 된장찌개 등 한식을 해 먹었긴 했지만, 집밥 같은 한식은 먹지 못한 지는 두 달 가까이 되었었다. 밥과 국, 나물 반찬과 고기—뚜렷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닭갈비였던 것 같다—까지 상 가득 차려진 집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와 오전에는 프라하 성에 갔다. 아쉽게도 Old Royal Palace는 공사로 인해 닫았고 성 비투스 대성당은 정오부터 열어, 성 이르지 성당과 Golden Lane을 먼저 둘러보았다. 성에 갔지만 으리으리한 보석과 왕족의 생활양식 등을 보지 못해 허전했다. 30여 분을 줄 선 끝에 들어간 성 비투스 대성당은 볼 만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고 생생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YJ와 점심을 먹으러 북쪽으로 갔다. 민박 사장님이 추천해 준 베트남 식당 Phở u Letné—말 그대로 현지인 맛집—에 가서 만났다. 분짜와 팟타이를 주문했다. 솔직히 팟타이는 우리 집 동네에 있는 태국 음식 맛집의 것만 하지 못했지만, 분짜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같이 주문했던 아이스티는 이전에 알던 것들과 달리 조금 걸쭉하고 적당히 달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이후 레티나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프라하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많았고, 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며 공원을 돌아다녔다. 자코파네에서 만난 지 한 달이 넘었기 때문에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 그동안 서로의 여행 이야기와 내 교환학생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YJ는 내게 여러 여행지를 추천해 주었다. 그중 특히 크로아티아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여기에 설득당해, 실제로 나는 보름 뒤 일주일 동안 크로아티아에 다녀왔다.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본 블라바 강의 모습
해가 지려는 기미를 보이자 시내로 돌아갔다. 계속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봤던 천문시계탑의 인형극을 보러 갔다. 시계탑 주위로 바글바글 둘러싼 사람들의 수 치고 굉장히 허무했다. 이후 KSPACE라는 곳에 갔다. K-pop 매장으로, 아이돌 관련 굿즈들로 빼곡했다. 예상외로 손님들이 꽤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당연히 K-pop 때문이 아니었다. 한 사흘 전 이곳 지하에 인생네컷이 생겼는데 YJ가 같이 찍자고 해서 오게 되었다. 한 번 찍는 데 200코루나—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이 넘는다—이나 들어서 당황했지만, 개점 이벤트로 한 번 더 찍게 해 줄 수 있어서 2번 찍었다. 다 찍고 사장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직원을 고용하기에 한국인이 편하다면서 민박 스탭을 하고 있는 YJ에게 영업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해가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빨리 팔라디움 백화점에서 맥주를 사들고 Riegrovy sady로 갔다. 원래는 공원에서 노을을 감상하려고 했지만, 도착하니 해는 이미 다 져있었다. 서머타임이 전날 풀렸다는 사실을 잊고 여유를 부린 것이 원인이었다. 어쨌든 도착했으니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1캔씩 마시며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했다. 홀짝홀짝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이나 진로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까지는 혼자 다니면 공원을 걸어 다니며 쓱 둘러보기만 했지, 가만히 앉아서 감상한 적은 없었다. 진지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니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22시가 되기 전까지 로비에서 사장님과 다른 스탭, 손님들이랑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하루 일정, 당시 뜨거운 이슈였던 전청조 사기 사건, 다른 유럽 여행지 이야기를 하며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정리했다.
캔맥주는 그저 평범했다 | 한참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프라하 성
이번 프라하 여행은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한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았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이것은 유일한 흠이었을 뿐이다. 깔끔하고 아늑했던 숙소, 동행과 같이 정말 맛있게 먹었던 저녁 식사, 마지막 날을 감성적으로 만들어준 YJ, 그리고 아찔하고 꿈같았던 스카이다이빙까지. 앞으로 다시는 또 이렇게 좋은 숙소에서 묵을 수 있을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YJ를 볼 수 있을지,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만큼은 평생 남을 사흘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