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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Aug 26. 2024

마라케시

모로코

 쾰른에 다녀오고 빌바오 여행을 준비하면서 쉥겐 비자 유효 기간에 대해 열심히 연구했다. 쉥겐 기간은 총 90일로, 이 기간 이후에는 해외에서 독일로 입국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나갈 때는 자유지만 돌아올 때는 아니다. 나는 9월 4일에 독일에 들어왔으나 9월 말 열흘 남짓 동안 비쉥겐 지역인 영국에 다녀왔었기 때문에 12월 12일에 기간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학생 비자가 언제 나올지 몰라 그전에 최대한 해외여행을 많이 나가고 싶었으나, 9일 밤에 뮌헨으로 돌아온 나로서 12일 안에 독일로 돌아오는 해외여행은 무리였다. 그러다 번뜩이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12일에 되기 전에 쉥겐 지역 밖으로 나가면 귀국 날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 내게 문득 한 친구가 1월에 이집트를 갈 거라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듣고 '오 아프리카? 여기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전까지는 시야가 편협하여 유럽 말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덕분에 아프리카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유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 간다는 호기심을 자극할뿐더러 아프리카는 당연히 비쉥겐 지역이기에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일단 이집트 항공권을 먼저 알아보았다. 아쉽게도 50만 원을 훌쩍 넘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모로코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11일에 가서 16일에 오는 항공권을 25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쉥겐 기간 90일을 꽉 채워 모로코 여행을 계획했다.

 뮌헨에서 마라케시까지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었다. 리스본을 경유하여 가는 20만 원짜리 항공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사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20만 원 역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일뿐더러 이륙이 새벽 6시라는 점이 더욱 부담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아프리카에 언제 또 가보겠어 하는 마음에 딱 하루만 고생하기로 하고 카드를 긁어버렸다. 그래서 얼마 못 자고 3시에 일어났다. 대충 식빵과 계란프라이로 배를 채우고 나왔다. 여전히 칠흑 같은 새벽이라 U반 마저 운영하지 않았다. 싸늘하고 적막한 버스 정류장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가 S반을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에 탔다. 이른 기상 덕분에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어 3시간 남짓 걸린 비행 내내 잘 수 있었다.

 리스본 공항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4시간은 대기해야 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리스본 시내를 잠깐 구경하고 싶었지만, 공항에 너무 외진 곳에 있어 불가능했다. 대신 공항 옆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저렴한 식당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다시 공항에 들어와서는 EU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출국 심사를 받았다. 내 앞사람의 출국 심사를 지켜봤는데, 심사관의 표정은 내내 무뚝뚝했다. 혹여 쉥겐 조약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차례가 되어 그의 앞으로 갔는데, 그는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 않는가. 매우 당황스러웠다. 보통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이 있어 한국말로 인사를 해주는 외국인은 항상 웃는 표정이었는데, 이렇게 무심한 "안녕하세요?"는 처음이었다. 잠시 내 여권을 훑어보더니 도장을 찍어주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여권을 돌려주었다—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직업 특성상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것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이해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인사는 그렇게 어둡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를 보고 알아라도 주었으면 했다.

모로코 국기와 사선으로 가득한 디자인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 외관에서는 오일 머니가 많이 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라케시에 도착한 뒤 긴 입국 심사 대기줄을 거쳐 공항 밖으로 나오니 벌써 17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겨울임에도 기온은 25도가 넘었고 햇빛은 아직 강렬했다. 2달 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햇빛이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두껍게 입은 옷 때문에 금방 더워 지쳐 버렸다. 시내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나는 기차역 건물을 잠시 감상한 뒤, 바로 3가지 일을 처리하러 동분서주했다. 먼저 환전부터 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800디르함 정도로 바꿨던 것 같다. 그다음 모로코텔레콤에 가서 유심칩을 구매한 뒤, 근처 슈퍼에 가서 3GB를 충전했다. 이후 바로 옆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하실라비드행 버스표를 구매했다. 사실 마라케시에 도착했을 때부터 설마 매진되었을까 내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남은 표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250디르함을 내고 표를 사서 숙소를 찾으러 갔다—같이 여행 오는 한국인들이 여럿 있다면 봉고 한 대로 같이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건물과 성벽이 황토색이나 붉은색을 띠었다 | 이슬람 권이라 그런가 공항도 그렇고 중동 느낌이 솔솔 난다

 기어코 모든 사안을 해결하고 나서 숙소로 갔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있는 골목에 식당들과 다른 호스텔들도 많아 헷갈려 한동안 애먹었다. 힘겹게 체크인을 완료하고 저녁을 먹으러 슬쩍 나가려고 했다. 유럽이었으면 거침없이 나갔겠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이곳에서 혼자 식당을 찾으러 가기에는 도박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호스텔 사장님에게 괜찮은 식당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호스텔 사장마저 영어를 못했다. 험난해질 것 같은 남은 하루가 머릿속을 스쳤다.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파파고를 연 순간, 내 옆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영어로 내게 무슨 문제냐며 물었다. 식당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통역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는데, 그는 통역 대신 자기랑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로 오래 대화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나로서 다소 부담스러웠다. 일단 잠시 메디나에 혼자 다닐 나를 상상해 보았으나 눈앞이 캄캄했다.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수염은 덥수룩하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여, 부러 기쁜 척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나와 Hisham은 같이 호스텔을 나섰다. 그가 나보고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길래,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이왕이면 모로코 현지 음식을 먹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모로코의 꽃, 메디나로 나를 인도했다. 그는 아랍어를 할 줄 알고 모로코에 대해서도 잘 아는 듯했지만, 길을 잘 알지 못했다. 결국 구글맵을 열어 길을 찾은 것은 나였다. 걸어가는 길에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는 국적은 모로코지만 현재 나처럼 독일에 살고 있었다. 뒤셀도르프에서 의류 사업을 하는 중인데 잠깐 쉬러 귀국했다고 했다. 독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금세 사람들로 붐비는 메디나에 도착했다.

메디나로 가는 길에 본 코우토우비아 모스크 | 음식을 파는 점포들과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 농수산 시장에 가보면 점포들이 쭉 나열되어 있고 각각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메디나 옆 광장인 Jemaa el-Fnaa도 마찬가지였다. 식당들과 과일 상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배치되어 있었고 천막 위에는 각자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다만 숫자가 뒤죽박죽인 것을 보니 번호 부여 규칙은 없는 듯했다. 우리는 호객꾼들의 호위를 받으며 둘러보던 중 Hisham의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갔다. 메뉴판에 영어도 있었으나 귀찮아서 주문은 Hisham에게 맡겼다. 그랬더니 바로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올리브와 토마토, 오이, 가지 등 간소하지만 다양한 음식들이 빵과 함께 나왔다. Hisham이 식당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친화력을 과시하는 동안, 허기졌던 나는 끊임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곧이어 메인 요리 딴지아가 나왔다—음식 이름은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 참 흥이 넘쳤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더니 음식을 가져다줄 때는 마치 공연을 하는 듯했다. 흥겨움이 너무 넘쳐나 문화 차이에 의한 거부감도 살짝 들었지만, 그저 흥이 많고 손님들을 많이 부르고 싶은 착한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음식의 맛은 거창한 서빙에 비해 아쉬웠다. 기름지고 느끼해서 애피타이저로 나온 토마토 없이 먹기 힘들었다. 후식으로는 민트차를 마셨다. 설탕의 직관적인 달달함과 민트의 시원함이 잘 어울렸다. 모로코에 있는 동안 가능하다면 항상 후식으로 마시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배불리 먹고 Hisham이 계산을 하는데 무려 300디르함, 한화로 약 4만 원이나 나왔다. 그도 그 금액을 듣고 심히 당황한 듯했다. 나도 금액을 듣고 당황하긴 했으나 Hisham이 금액을 세세히 따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알아서 잘하겠거니 했다. Hisham과 직원이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결국 Hisham이 인정하고 300디르함을 지불했다. 음식들의 가격이 꽤 나가기도 했고, 우리가 주문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오는 애피타이저와 식전 빵들까지 포함되어 이렇게까지 가격이 나왔다고 내게 설명해 주었다. 이 식당에게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줄곧 노래 부르고 춤추던 그들의 서비스 값이라 치고 훌훌 털어버렸다.

메인 음식보다 맛있었던 애피타이저 | 또 음식 사진을 안 찍었다... | 민트 가득 민트차

 이후 광장에서 북 같은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조금 구경하다 나왔다. 나는 피곤해서 먼저 숙소에 들어가겠다고 했으나, Hisham은 아직 자신은 쌩쌩하다며 더 놀다 오겠다고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바로 씻고 누웠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더웠는데, 밤에는 쌀쌀했다. 아프리카는 더위에 민감하여 냉방 시설은 완벽하게 구비하는 한편 난방 시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때문에 모로코 여행 내내 고생했다. 이불 한 채로는 부족하여 외투를 입고 잤다.

 마라케시에 반나절도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도시의 전체적인 색감이 빨간색인 것과 대조되는 파란 건물들이 유명한 마조렐 정원—입생로랑으로도 유명하다—, 이슬람 건축 양식이 담겨 있는 광활한 바히아 궁전 등 유명한 랜드마크들 가지 못했다. 11일까지 출국해야 한다는 빡빡한 조건을 맞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프리카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사막 투어이니, 우선순위가 비교적 낮은 것을 깔끔하게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도 메디나에서 가서 모로코가 어떤 나라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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