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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Sep 08. 2024

페스

모로코

첫째 날

 10시간의 여정 끝에 기어이 페스에 도착했다. 땀과 개기름으로 범벅이 된 몰골로 숙소를 찾아갔다. 호스텔은 비좁은 골목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우 이틀 전에 1박에 8유로도 안 하는 것을 보고 회까닥 넘어가 결제한 곳이다. 정말 딱 돈값만 하는 곳이었다. 6인실 도미토리 치고 넓은 방과 조식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낙후된 화장실과 머리카락이 가득한 침구류를 견뎌야 했다. 온수야 물론이고 난방 시설 또한 만무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오니 해는 이미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핫산네에서 간식거리를 넉넉히 챙겨 온 덕에 배가 고프진 않았다. 배가 완전히 꺼지기 전까지 숙소 주변 메디나를 둘러보았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어떤 현지인이 내게 이곳이 미로 같아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 다가왔다. 모로코에서 이런 호객행위를 주의하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혼자 돌아다니면 별로 얻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수락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그를 따라 메디나를 훑었다. 혼자라면 납치될까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을 골목골목을 쑤시고 다녔다. 중간에는 나름 역사 깊은 모스크에도 들러서 사진도 찍었다. 투어가 끝나고 고맙다고 하고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매우 황당하게도 그는 20유로나 불렀다. 수염은 덥수룩한데 허우대도 있고 우리가 서 있던 골목은 외딴곳이어서 살짝 겁도 났다. 순간 봉변을 당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에 20유로는 너무 비싸고 타협하자는 식으로 시간을 끌며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골목으로 나왔다. 내가 학생이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참말과 거짓말을 섞으며 그의 연민을 유도했다. 처음에는 그도 안 물러서는 듯했으나 결국 그는 그럼 내게 양심껏 돈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난 정말 양심껏 2유로짜리 동전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내내 웃상이었던 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내게 진지하게 뭐라 했으나 통하지 않자, 자기도 부양해야 할 가족과 직원들이 있다고 내게 호소하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여기서 더 돈을 안 주면 안 떨어질 거 같아 1유로짜리 동전을 하나 더 준 뒤, 나도 정색한 표정으로 이게 내 최선이라고 했다. 그도 질렸는지 결국 포기하고 가버렸다. 그가 범죄를 저지를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혼자가 된 후에야 내가 배고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말다툼—영어로 누구와 싸운 적은 처음이었다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피곤한 표정으로 숙소 주변 식당에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옵하'라고 부르는 것이 들렸다. 정말 '오빠'라고 말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 반, 그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에 대한 호기심 반에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환히 웃으며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순간 나는 벙쪄버렸다. 그녀의 완벽한 이목구비와 귀여운 목소리에 매혹되어 버렸다. 3초 정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반갑습니다'라고 얼버부리며 도망치듯 걸어 나왔다. 단연코 내가 지금까지 본 아랍인들 중에서 가장 예뻤다. 보통 아랍인들의 눈과 코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데, 그녀의 동그란 눈과 오뚝한 코,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황금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여자 앞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 나로서, 직전 사건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졌으니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절대 생각은 나올 수가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그녀를 등지고 떠나면서 후회는 더 커졌다. 하지만 당장에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저녁부터 먹으러 갔다.

 타진과 민트 차로 생각을 정리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소화도 시킬 겸 아까 그녀를 다시 보러 갔다. 하지만 길은 너무 복잡한데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내가 왔던 길이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구글맵에 의존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그녀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을 찾았다. 아쉽게도 그 상점 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심신미약인 상태만 아니었어도 당시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떠나버린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

 다시 숙소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 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사실 3유로짜리 투어는 거의 잊혀졌다. 나를 얼어붙게 만든, 여태 들어본 '오빠' 중 가장 매혹적인 그 '옵하'가 안 좋은 기억을 말끔히 지워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잠들기 직전까지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정말 짧지만 강렬한 한 단어였다.

핫산에서 먹은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었다 | 골목 밤길이 안 무서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둘째 날

블루 게이트 - Jnan Sbil - The Royal Palace in Fez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옥상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호스텔을 나섰다. 블루게이트(Bob Boujloud)를 지나 성벽을 따라 Jnan Sbil라는 정원으로 갔다. 푸른 수목들과 연못에 물레방아까지 있어, 시각적으로 붉은빛을 띠는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평화로운 정원을 거닐던 도중 등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슬쩍 돌아보는데 4명의 소녀들이 모여서 수군대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내 갈 길을 가는데, 이들은 계속 나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짐짓 모르는 체하며 10분 정도 돌아다녔다. 그러다 정원을 나가려고 할 때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오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도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나머지 3명도 그새 다가와 멈춰 선 나를 둘러쌌다. 한국, 특히 K-pop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며 자기들이 아는 한국어를 막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친절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유독 엄청 수줍어하는 소녀가 1명 있었다. 나머지 친구들이 Yasmine을 재촉하더니 그제야 그녀가 내게 수줍게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스무 살 남짓 되었을 줄 알았는데, 겨우 17살이라고 해서 다소 당황했다. 그녀는 내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인스타그램은 안 해서 대신 Whatsapp 아이디를 알려주었다—인스타그램을 안 하면 이렇게 뻘쭘해질 때가 종종 있다. 모르는 여자에게 번호를 따이는 경험은 23년 인생 처음이었는데, 그녀가 이성으로 보이지 않았음에도 기분은 무척 좋았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그녀의 용기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비록 나는 뮌헨에 돌아와서 괴상한 선전을 하는 데에 이 경험을 이용하곤 했지만, 언젠가는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Jnan Sbil의 연못 전경 | 잘생긴 사람은 귀신 같이 알아보는 아기 고양이

 그들과 헤어진 후 Royal Palace로 갔다. 실제 왕궁이기 때문에 근위병들이 주위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록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문 바로 앞까지 가서 사진은 찍을 수 있었다. 은색과 옥색의 조합은 처음 보았는데 어울리진 않지만 이미지 탓인가 이슬람권 건물에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내내 Yasmine은 내게 연락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나도 성실하게 답을 해주었는데, 계속 여행을 방해하게 되어 알림을 꺼버렸다. 그래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자칫 내가 깎을까 답장을 아예 안 하진 않았다. 그녀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그녀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패턴이 계속 이어졌다. 예의상 나도 물음표를 하나 달아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 모로코 전통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녀는 쿠스쿠스라는 음식을 추천해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한 후 주변 식당에서 쿠스쿠스를 직접 먹어보았다. 맛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어정쩡하게 카레 느낌이 나는 소스에 차좁쌀 같은 밥알은 모두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옷가지들을 널브러뜨린 채 파는 노점상들 | 모로코 전통 음식을 정 먹고 싶다면 쿠스쿠스 대신 타진을 추천한다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 천천히 일어나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튿날 새벽 6시 이륙이어서 시간은 남아돌았으나 더 이상 이 복잡한 도시에 있기 싫었다. 숙소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30분 넘게 천천히 걸어간 뒤 16번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의 모습을 보고 당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운행한 지 50년은 된 버스라고 생각됐을 정도로 외벽에는 상처로 가득했고 뒷문은 완전히 닫히질 못했다. 수요도 많아 버스 안은 꽉 차서 TV에서만 보던 버스 안내양이 있는 옛날 우리나라 버스가 생각이 났다. 다행히 버스는 고장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항은 버스와 정반대로 5년도 안 되어 보였을 만큼 세련되어 보였다. 10시간 정도를 대기해야 했기에 내부 시설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청주 공항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비싸서 음식을 사 먹을 생각도 없긴 했지만, 내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모든 상점이—그래 봤자 3곳밖에 안 됐다—문을 닫아버렸다. 그나마 사람도 별로 없어서 벤치에 누울 수 있었다. 하지만 4시까지 한숨 자려고 했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공항마저도 난방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Jack Wolfskin 바람막이 만으로는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껴입고 수건으로 몸을 덮은 뒤에 잠을 청했다. 그래봤자 의자는 또 딱딱하여 푹 잘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I2DL—뮌헨공대에서 여는 딥러닝 개론 수업—과제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3시가 되어서야 체크인이 가능해졌다. 가장 먼저 체크인해서 탑승장에 들어갔지만, 여기도 콘텐츠가 없었다. 잡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요컨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최악의 노숙이었다.

 무사히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해서 보니 한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랑 한참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사실 모로코에서 독일로 가는 가장 저렴한 직항 비행기여서 아무 생각 없이 예매했었다. 프랑크푸르트야 대도시니까 뮌헨으로 가는 길이 순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한 공항에서 1시간 넘게 다른 마을로 가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결국 DB 어플만 믿고 Bullay로 가는 750번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정류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버스는 도통 오질 않았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버스 정류장에서 30분 정도 기다렸다. 페스 공항에서 벌벌 떨며 비행기를 기다렸던 그 고역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시간은 짧았지만 추위는 더 강렬했다. 결국 다른 버스를 타고 Koblenz에 가서 기차를 탔다. Yorma's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으며 배를 채우고 만하임을 거쳐 뮌헨으로 갔다—29유로 티켓으로 RE 기차는 자유롭게 탈 수 있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집에 가기 전 평소 궁금했던 Ayinger 맥주 2병을 사러 tegut에 들렀다. 결제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어떤 파키스탄 아저씨가 자기가 사겠다며 결제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호의라 당황했지만 대화를 잠깐 나누어보니 그냥 착한 아저씨였다. 내 꼴이 말이 아니었나 갸우뚱하며 U2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김없이 라면과 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 일어나면 감기에 걸려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다시 못해볼 새로운 경험들을 했던 뜻깊은 여행이었던 만큼, 고생도 정말 많이 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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