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에 갈지 말지는 전날밤에 숙소에 돌아와서야 정해졌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바로 뮌헨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려 했으나, 이때만큼 뉘른베르크에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가 없었기에 뉘른베르크에 들르기로 정했다.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그런지 유랑에서 동행은 금방 구해졌다. 게다가 도이칠란트 티켓—나 같은 학생은 29유로, 일반인은 49유로만 내면 한 달 동안 대중교통 및 RE, RB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덕분에 기차 예매 걱정 없이 유동적으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7시에 일어나서 출발했지만 정오가 넘어서야 뉘른베르크에 도착하였다. 돈 없는 학생에게 IC는 사치라 내 분수에 맞는 RE를 선택한 데에 다른 결과이다. 중앙역에서 전날 구한 동행 GR 누나와 만났다. 이 누나도 프랑스 교환학생이어서 편했다. 프랑스는 벌써 종강을 해, 여행을 조금 다니다 한 달 안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아직 종강이 한 달 넘게 남았어서 엄청 부러워한 한편, 일찍 귀국할 계획이라는 점에는 다소 아쉬웠다. 나라면 유럽을 최대한 즐기며 귀국을 늦추었을 텐데. 이런저런 교환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중앙역이 있는 페그니츠 강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쭉 걸어 올라갔다. 오전에 비가 왔었던 터라 날씨도 흐리고 분위기도 독일의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분위기여서 별 감흥이 없었다. Fleischbrücke를 건너 성 제발트 교회까지 갔다. 나는 뉘른베르크성까지 올라가서 구경하고 싶었으나, GR 누나는 피곤해서 카페에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잠시 흩어졌다가 1시간 뒤에 만나기로 했다.
뉘른베르크성에 도달하려면 꽤나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등 여타 성들과 비슷하게도 성 내부에는 과거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택들도 생긴 건 비슷했는데, 유독 찍찍 그어진 직선들이 눈에 띄었다. 매표소에 들어가서 가장 싼 표를 하나 끊었다. 우물과 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었다. 먼저 Deep Well부터 갔다. 현장체험학습을 온 학생들 때문에 시끌벅적해서 해설사의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엄청 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물 몇 방울을 또르르 따랐는데, 대략 5초 정도 뒤에야 바닥에 떨어졌다는 소리가 났다. 이후 Sinwell Tower에 올라가서—다른 전망대들에 비하면 쉽게 올라갈 수 있다—흐린 뉘른베르크의 전경을 감상하고 내려왔다.
뉘른베르크성 내부 |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매우 깊다
다시 내려와 성 게발트 교회에서 모였다. 여기서 또 다른 동행 JY 누나도 합류했다. 인사를 나누고 근처에 있는 Hauptmarkt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했다. 내려오는 길에서부터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날개 달린 천사 모양의 전등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켓에 들어가니 천사 인형도 있었고 심지어 금빛 천사 분장을 한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천사가 뉘른베르크의 상징이라는데, 정작 왜 상징이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어찌하였든 이 금빛 천사의 존재 덕분에 다른 크리스마스 마켓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천사라면 분장하는 데에 고생하지는 않겠지 | 고급스럽게 생긴 크리스마스 피라미드
이후 예쁘기로 유명한 Weißgerbergasse로 갔다. 전에 뉘른베르크성에서 봤던 지그재그 직선들이 그려진 목주 주택들이 쭉 내열되어 있었다. 도로와 건물들이 깔끔한 게 북유럽의 느낌도 났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연히 다른 동행과 걸어가고 있던 YJ를 만났다. 프라하 한인 민박 이후 2달 만에 보는 터라 무척 반가웠는데, 각자 동행이 있어서 정말 짧게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폴란드에서 처음 보고 체코에서 잠깐 같이 놀았던 사람을 독일에서 우연히 마주치다니, 다시 생각해도 참 놀랄 만한 우연이었다.
페그니츠 강 남쪽으로 내려와 Chirstkindlesmarkt로 갔다—굳이 번역하면 아기 천사 마켓이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기가 왜 3대 크리스마스 마켓이지에 대해 의심했지만, 밤이 이슥해지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진 만큼 더 많은 조명들이 켜지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전까지는 보통 먹거리 위주로 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누나들이 인형들에 관심이 많아 여러 인형 상점에도 들어가 보았다. 금빛 천사들은 물론이고 호두까기 인형, 눈사람 등 다양한 인형들이 있었다. 내 방을 장식할 만한 인형을 하나 사볼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포기했다.
날씨가 흐려서 사진이 잘 안 나와 아쉬웠다 | 천사 외에도 천막 지붕이 모두 빨간색과 하얀색 줄무늬로 된 것이 특징이다
다들 배가 고파져 저녁을 먹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사람들이 매우 많아 자리가 있는 식당을 찾기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 들어간 곳이 Bratwursthäusle bei St. Sebald였는데, 의외로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전날 갔던 아우구스티너 같은 독일식 식당이라 비슷하게 음식을 시켜 먹었다. 음식 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맥주는 확실히 아우구스티너만 하지 못했다. 밥을 다 먹고는 Kinderweihnacht에도 가보았다. 확실히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 그런지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들도 있고 산타나 천사 등 큰 모형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Glühwein으로 입가심하며 둘러보다 동행들과 헤어졌다.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뮌헨으로 가는 RE를 놓쳤다. 어쩔 수 없이 RB를 타야 했다. RE가 우리나라의 새마을호라 한다면 RB는 무궁화호라 할 수 있다. 속도도 느리고 그만큼 정차하는 역도 많다. 조금만 더 일찍 중앙역에 갔다면 RE를 타고 2시간 만에 뮌헨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미리 DB 어플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그동안 다녔던 여행들에 비해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간 여행이었지만, 몸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차가운 공기와 오다 말다 하는 비 때문에, 항상 손은 시렸고 신발은 축축했다. 나을 듯했던 감기가 다음날 되니 다시 심해졌다. 더 쉬었어야 했는데 괜한 욕심으로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여행을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어차피 연인도 없는데 크리스마스 때까지 되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