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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Dec 26. 2023

스톡홀름

스웨덴

첫째 날

스톡홀름 시청 - 노벨상 박물관 - 스웨덴 의회 - 왕의 정원 - Mariaberget

 전날 밤 정신없이 숙소에 들어왔던 터라, 매우 피곤했다. 그동안 쌓인 빨래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널고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친절한 숙소 주인 Marie가 자기가 다 알아서 해주겠고 했다.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은 하고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덕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천천히 숙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물가가 비싸기는 헬싱키와 매한가지인 마트에서 치아바타와 요구르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동행을 만나러 중앙역으로 갔다. 트램 창문을 통해 스치듯 감라스탄을 보고 스톡홀름은 헬싱키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중앙역에 도착해서는 동선을 짜며 기다리다 동행을 만났다. 이 분은 독일에서 막 교환학생을 마친 동갑내기였다. 이번에도 역시 독일과 여행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었다. 그러나 크라쿠프에서 만났던 누나만큼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 분은 딱히 세운 계획이 없어서 내가 정한 동선대로 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헬싱키 호스텔에서 만났던 대위 누님의 조언대로 바로 스톡홀름 시청으로 갔다. 건물 색 배치가 헬싱키의 우스펜스키 성당과 매우 흡사해서 놀랐다. 특정 각도에서 봤을 때는 시청보다는 성당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시청 내부 투어 자리가 남아 바로 표를 끊고 투어가 시작하기 전까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청 바로 옆에 있는 강 건너 보이는 쇠데르말름은 나름 운치 있었다―흐린 날씨도 한몫했다. 시청 투어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때와는 달리 가이드가 발음이 좋고 쉬운 단어들만 골라 써서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내부는 칙칙하지 않고 오히려 궁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파란색은 도통 보이지 않는 블루홀―처음 설계할 때는 파란색으로 외벽을 칠할 계획이었어서 블루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은 매우 넓었고 홀을 둘러싼 창문들과 계단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위엄을 높여줄 만했다. 스톡홀름 의회 회의장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적갈색 외벽과 목재로 만들어진 책상들이 마치 몇백 년의 역사를 지닌 듯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후 다른 공간들을 지나 골든홀에 도착했을 때는 입이 딱 벌어졌다. 모든 벽이 금빛으로 되어 있어 북유럽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벽에는 수많은 신의 모습과 동서화합을 나타내는 벽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 명씩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계단을 내려가는 것―시선 처리가 매우 중요하다을 따라 하며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가이드가 처음에 이 건물은 20세기 초에 지어졌다고 했지만, 그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공간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도 고유의 멋을 뽐내는 관공서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간소하지만 금으로 포인트를 준 이런 스타일의 건물이 정말 마음에 든다 | 나름 여신인데 예쁘게 좀 그려주지

 이후 감라스탄으로 내려가면서 점심을 해결할 식당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구글맵에서 Slingerbulten이라는 식당을 찾았는데, 가성비가 좋다는 후기를 보고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샐러드와 미트볼, 연어구이 이를 주문했는데, 모두 짜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여태 북유럽에서 다녔던 식당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다. 이후 동행과 잠시 떨어져서 나는 노벨상 박물관으로 갔다. 일부가 공사 중이라 절반 가격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만한 가치조차도 하지 못하였다. 각 수상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담겨있는 키오스크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아는 수상자들만 찾아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편지와 털신을 보고 나왔다. 내가 아는 수상자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다. 박물관에 일본인들이 유독 많았는데, 일본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해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앞에서 다시 동행을 만난 후, SNS에서 유명하다는 세 건물―초록, 빨강, 주황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 뒤, IKEA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으며 늦게 합류할 동행을 기다렸다. 1000원도 하지 않는 이 콘 아이스크림은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싸다고 느낀 것이었다. 새로운 동행은 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 관련 종사하는 20대 후반 남자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삶은 살아온 사람이었다. 특히 학생과 직장인의 여행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때 제대로 느꼈다. 일단 모인 직후 스웨덴 의회를 둘러보고 왕의 정원으로 갔다. 공원을 산책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어디 들어가서 쉬면서 맥주 한 잔을 하자고 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긴 했지만, 더 가볼 곳도 딱히 없고 저녁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정원 중앙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맥주 한 잔씩 사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도시 관광보다는 외국인 친구들을 새로 사귀고 클럽 가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이따 클럽에 가자고 물으시길래 싫다고 답하니 대신 라이브 펍을 제안했다. 라이브 펍은 한 번 가보고 싶었어서 이따 Stampen이라는 펍에 가기로 결정했다.

전시되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편지와 털신 | 진하고 알록달록한 감라스탄의 건물들 | 스톡홀름에 있는 동안 매일 사 먹었다

 저녁으로는 간단히 Max Burgur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출국하기 전부터 친구가 소개해준 스웨덴의 햄버거 브랜드여서 매우 기대했는데, 맛은 있었으나 흔히 있는 수제버거와의 차별점은 느끼지 못하였다. 늦게 만난 동행은 외국인 친구가 추천해 준 식당으로 가고, 처음부터 다녔던 동행과 같이 Mariaberget으로 가서 스톡홀름 야경을 감상했다. 강 건너 보이는 감라스탄의 건물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비록 알록달록한 모습은 어둠에 감추어졌지만, 반짝이는 빛들과 지붕들, 그리고 시청의 눈에 확 띄는 민트색 탑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검은 건물―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가 쌀쌀한 날씨에 스산한 분위기까지 더해주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Stampen으로 갔다. 인디 밴드가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것을 펍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단순히 기계로 음악을 트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수의 애드리브, 관객들의 호응까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만히 앉아 1시간 넘게 감상하다 눈이 조금씩 감겨 숙소로 돌아왔다.

시청과 감라스탄이 동시에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 | 솔직히 노래를 엄청 잘하진 않았으나 분위기가 좋았다

 

둘째 날

Vasa Museum - Skansen - Museum of Spirits - Royal Djurgarden

 어제 동행들과 잘 맞았다면 이날도 같이 다닐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 혼자 다녔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혼자 가면 남의 속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한데, 어차피 유르고르덴에 있는 박물관들을 돌아볼 계획이었으니, 혼자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아침으로 Max Burger에서 치즈버거―가장 저렴한 메뉴였다를 사 먹은 뒤 Vasa Museum으로 갔다. Vasa호의 침몰 당시 상황과 복구 작업까지 세세하게 구현을 잘해놓았다. 특히 박물관 중앙에 Vasa호를 떡 하니 전시해 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박물관을 만들기까지는 매우 큰 노력이 들어갔을 것 같다. 일단 저 큰 배를 끌어올려야 했고, 이 배에 남아있는 것들을 찾아 최대한 손상되지 않게 옮겨야 했으며, 이들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과 해양 문화를 분석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을 것을 상상하니, 스톡홀름 사람들의 집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 덕에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당시 투자했던 금액을 뛰어넘는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후 야외 박물관인 Skansen으로 갔다. 작은 아쿠아리움도 있었고, 옛날 스톡홀름 사람들의 생활양식들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딱히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대신 중간중간 배치된 나무들과 박물관을 두르고 있는 숲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 제약 없이 돌아다니는 공작과 청설모도 가까이서 보고 헬싱키와 탈린에서 맛보았던 순록도 구경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이곳은 박물관보다 공원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잘 어울렸다. 날씨가 너무 좋아 나무와 동물들을 보며 무념무상으로 평화롭게 걸어 다녔다.

큰 선박을 통째로 박물관 중앙에 들여다 놓았다 | 순록도 캥거루처럼 잠이 많다

 그다음 원래 Abba 박물관이나 노르딕 박물관에 가려했으나, 그 옆에 우연히 Museum of Spirits를 발견하고 계획을 변경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스웨덴이 술로 유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의 작은 아이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여러 술들의 향을 모아 일일이 맡아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입장료 값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되었다. 맥주에 들어가는 홉의 향은 좀 역했지만, 위스키의 향들을 맡을 때에는 행복했다. 단언컨대, 여태 가본 박물관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다. 이 박물관을 떠나기 전에 위스키 향을 맡는 곳을 다시 찾아가 열심히 킁킁거리다 정신을 차리고 박물관에서 나왔다. 살짝 출출해져 강을 끼고 있는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당이 당겨 젤라토도 먹었다. 어쩌다 보니 스톡홀름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급격히 많이 먹게 되었다. 1000원짜리 콘 아이스크림이나 5000원짜리 젤라토나 아이스크림은 항상 맛있었다.

위스키 향을 맡을 때는 늘 천국에 온 기분이 든다 |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시원하고 쌉쌀한 IPA는 참을 수 없다

 관심 없는 박물관에 가서 입장료를 낭비할 바에야 자연을 더 감상하고자 유르고르덴 공원에 가서 또 한참을 걸어 다녔다. 생화들을 전시한 야외 구역이 있길래 오랜만에 다양한 꽃향기를 맡아보았다. 박물관 구역으로 오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늦은 점심으로 간단히 피시 앤 칩스를 먹고 쇠데르말름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아시아 마트에 들러 진라면 1봉지―무려 2600원이나 했다―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끓여 먹었다. 젓가락이 없어 먹는 데에 불편했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숙소 테라스에서 쌀쌀한 바람을 쐬며 먹는 라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셋째 날

스톡홀름 국립 도서관 - 스웨덴 왕궁

 앞으로 며칠 동안은 계속 숙소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체크아웃을 최대한 늦게 했다. 숙소 주인 Marie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중앙역에 짐을 맡긴 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아직 가보지 않은 쇠데르말름 남부로 갔다. 네이버에 이곳에 관한 후기가 전무한 이유를 도착하자마자 바로 알게 되었다. 정말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 무색무취한 빌라들만 가득했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헬싱키에서 추천받았던 식당 Meatballs for the People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섞인 미트볼 6개가 들어간 크림 파스타를 시켜 먹었는데, 너무 느끼했고 미트볼은 짜고 고기 냄새가 많이 나서 실망스러웠다.

 그다음 감라스탄을 거쳐 국립 도서관으로 갔다. 이날은 날씨도 매우 맑아 아름다운 감라스탄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각진 세모 지붕과 알록달록하고 선명한 외벽으로 이루어진 예쁜 집들을 눈에 담았다. 이후 국립 도서관에 가서 원형 책장을 둘러보다 아는 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로비에 있는 체스보드 책상에 앉아 멍을 때렸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IKEA에 가서 또 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감라스탄을 떠돌아다녔다. 우연히 스웨덴 왕궁 주변에서 무언가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구경했다. 알고 보니 스웨덴 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있었다. 귀빈들이 차례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다 해가 지기 시작해 Barrels Burger & Beer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패티가 두껍고 다른 재료들도 풍부해 그 유명한 Max Burger보다 훨씬 맛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맛있었던 것은 맥주였다. 알코올 8.5%짜리 Doubled IPA를 마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홉의 쓴 향과 과일향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었다. 알코올이 조금 치는 게 살짝 아쉽긴 했다. 7% 정도였다면 내 인생 최고의 맥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중앙역에서 3시간 가까이 노숙을 하다 자정에 오슬로로 출발하는 야간버스를 탔다. 내 자리는 맨 뒷자리 중앙―연달아 붙어있는 5자리 중 앞 좌석이 없는 그 가운데 자리―여서 좁았고, 주위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 여남은 명이 우르르 타서 소란스러워 한동안은 잠에 들지 못했다. 오슬로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감라스탄의 모든 골목이 영화에 나올 법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 원하는 책을 찾기에 좋은 구조는 아닌 것 같다

 왜 사람들이 북유럽 국가의 수도들 중에서 스톡홀름에 가장 많이 오는지 알 수 있었다. 들러볼 만한 박물관들도 꽤 많고, 궁전과 시청 등 웅장한 건물들도 곳곳에 있어 콘텐츠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크고 작은 건물들 하나하나가, 특히 감라스탄의 주택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감라스탄을 이길 수 있는 시가지가 또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같이 다니는 사람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폴란드에서 만났던 동행들은 대화가 너무 잘 통해서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반면 스톡홀름에서의 첫 번째 날 만났던 동행들과는 잘 맞지 않았다. 대화가 툭툭 끊기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색하게 말없이 주변만 둘러다 보는 상황이 많이 나왔다. 이럴 때마다 차라리 혼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짧게 짧게 만나다 보니, 내가 동행을 구하는 목적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외롭게 다니기 싫어서 동행을 구했었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보니, 같은 것을 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같이 다닌 감라스탄은 매우 예뻤음에도 불구하고 보자마자 내 마음에 쏙 골목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항상 나와 잘 맞는 동행을 구하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같이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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