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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Dec 28. 2023

오슬로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 뭉크 미술관 - 아케르스후스 요새 - 노르웨이 왕궁 - The Vigeland Park

 스톡홀름에서 탑승한 야간 버스가 6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일출이 시작되기 직전 남색 하늘이 펼쳐진 서늘한 새벽, 버스 터미널 밖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버스에서 제대로 자지 못한 터라 반쯤 눈이 감긴 채로 캐리어를 끌며 Anker Hostel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호스텔 로비에도 직원 단 1명만 있었다. 짐을 맡기고 아침을 해결하러 마트로 갔다. 헬싱키에서 추천받은 캐비어 튜브와 돌빵, 그리고 감자칩을 사 왔다. 로비 소파에 앉아 돌빵에 캐비어 튜브를 발라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명란젓과 색깔뿐만 아니라 맛도 비슷했다. 물가가 비싼 북유럽에서 그래도 캐비어 튜브는 싼 편이라 많이 사가고 싶었다. 하지만 100mL 이하짜리 캐비어 튜브가 없어서 그리하지 못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흘 더 노르웨이에 남아있는 동안 아침은 오직 이 캐비어 튜브와 돌빵으로만 해결했다.

정말 고요했던 오슬로의 새벽 |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빵에 캐비어를 대충 발라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원래 9시에 동행과 만나 하루 종일 같이 다니려고 했으나, 감기가 걸렸다고 연락이 와 혼자 다니게 되었다. 먼저 뭉크 미술관으로 갔다. 3가지 버전의 '절규'가 30분마다 무작위로 바뀌면서 하나씩만 보여준다는 정보를 헬싱키에서 입수해서, 모든 종류를 다 볼 때까지 있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갔을 때는 석판화 '절규'가 있었다. 흑백이라 더 비참해 보였다. 이후 그림이 바뀌기 전까지 다른 그림들을 쭉 둘러보았다. 2번째 본 '절규'는 크레용 버전이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색이 연해 주인공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다시 다른 전시관에 들렀다 '절규' 구역으로 돌아왔는데, 불운하게도 또 석판화가 열려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그림들을 더 보며 30분을 때웠다. 지루한 30분이 지나고 드디어 유화 '절규'가 눈앞에 나타났다. 색채는 더 진했지만 왼쪽 끝에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두리뭉실했고, 주인공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색깔들이 더 진하게 보이니 주인공이 공포에 질린 모습이 더 생동감 있었다. 뭉크의 '절규'가 그려진 2만 원짜리 장바구니―북유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기념품이다를 기념품으로 사고 밖으로 나왔다.

석판 | 크레용 | 유화

 2시간 가까이 뭉크 미술관에 있은 이후로는, 오페라 하우스에 갔다. 건물이 참 특이하게 생겨, 경사가 밋밋한 지붕을 올라 오슬로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다음 국립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아케르스후스 요새로 갔다. 성벽의 색감이 다른 곳들에 비해 칙칙하고 웅장한 것도 아니어서 인상 깊지 않았다. 대충 쓱 둘러보고 내려와 노르웨이 궁전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꽤나 큰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코스 주변 보행자 통로들은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가뜩이나 사람들 덩치도 큰데 인원도 많아 이동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군중 속을 비집고 들어가며 겨우 노르웨이 왕궁에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밝은 노란색과 회색 벽돌로 왕궁치고는 소박하다고 느껴졌다. 13시 30분부터 교대식이 시작했는데, 이미 많이 봐왔던 것들이라 재미가 없었다. 내 앞에 서있던 호리호리한 안경잡이 근위병만 뚫어져라 보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노르웨이 하면 연어, 연어 하면 노르웨이 아니겠는가. 웃돈을 주고서라도 여기서 연어는 꼭 먹어보고 싶었다. 남쪽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The Salmon이라는 식당에 갔다. 날이 쌀쌀하여 따뜻한 연어 수프와 사시미 6조각을 먹었다. 헬싱키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담백하고 연어가 더 부드러웠다. 북유럽의 육류 요리는 대부분 느끼했지만, 해산물 요리는 전혀 그렇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한 조각에 3천 원이 넘는 연어 사시미를 하나씩 음미하면서 먹었는데, 너무 싱싱해서 그런가 살짝 수돗물에서 나는 듯한 그런 맛도 났다. 아무튼 북유럽의 연어 수프는 나중에 집에서 요리해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되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말라서 그런지 든든해 보이지는 않았다 | 북유럽에 오면 연어 수프는 꼭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이후 서쪽으로 40여 분을 걸어 The Vigeland Park에 도착했다. 공원 중앙으로 가면서 길가에 쭉 전시되어 있는 역동적인 전라의 조각상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또 전라의 조각상들이 떠받들고 있는 분수와, 전라의 조각상들이 서로 엉켜있는 탑도 있었다.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조각상들이 많아서 재밌었다. 그리고 단순히 이런 조각상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풀밭과 꽃밭도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어 평온하게 산책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다시 공원에서 나오는데 아프리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에 가보니 두어 명의 카메라맨들이 있었고, 한쪽에는 남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여자들이 일렬로 서 박수를 치며 신랑신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결혼 관련 행사를 밖에서 하는 것은 낭만 있었지만, 그들이 부르던 이상한 노래는 너무 시끄러웠다.

청동 조각상들이 다리에 쭉 나열되어 있다 |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건지 다툼을 표현한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온다

 숙소까지 다시 한참을 걸어 돌아오니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배가 고파서, 간단하게 브리또를 먹고 들어왔다. 다음날은 내가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 송네 피오르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사두었던 감자칩만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나름 노르웨이라는 한 국가의 수도였지만, 헬싱키와 마찬가지로 밋밋했다. 특히 직전에 있었던 스톡홀름과 비교되니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이 도시가 내세울 것이 뭉크밖에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The Vigeland Park는 접근성만 빼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시내는 정말 무색무취했다. 어쩌면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피오르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극대화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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