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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Jan 03. 2024

코펜하겐

덴마크

첫째 날

Frederiksberg Gardens

 비행기가 1시간가량 연발하여 숙소에는 17시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 묵은 호스텔은 Steel House Copenhagen이었는데, 이때까지 묵은 호스텔들 중 최악이었다. 직원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고, 시설이 문제였다. 도미토리에 딱 들어간 순간 방에 대한 첫인상은 "와, 너무 좁다."이었다. 2층 침대가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2개가 있었고 이들을 가르는 아주 좁은 통로가 있었다. 어찌나 좁던지, 그 통로에서는 배낭을 메고 한 바퀴 돌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나는 또 2층으로 배정되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샤워실이 딸려 있는 화장실이 방 안에 있었는데, 이 또한 좁고 방음도 잘 안 되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사람을 욱여넣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참으로 가상했다.

 짐을 대충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미리 갈 곳들을 구글맵에 저장해 두었는데, 개중 두 곳만 숙소의 서쪽에 있었다. 그중 하나인 Carlsberg 양조장은 내부 공사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아, 사실상 Frederiksberg Gardens 하나뿐이었다. 다음날의 동선을 최적화하기 위해 이날에는 이 정원에만 다녀왔다. 숙소에서 걸어서 약 40분이 걸렸다. 정원은 간결하게 강과 나무, 풀밭들만 있었음에도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동양풍의 건물과 다리가 있었는데, 중간중간 포인트를 주어 마음에 들었다.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드라마(?)도 촬영할 만큼 평화롭고 예쁜 정원이었다 | 저 멀리 보이는 Frederiksberg 궁전은 이미 영업시간이 끝나 가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아시안 마트에서는 라면을 사고 REMA 1000에서는 고등어와 과자, 그리고 양조장에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랠 겸 Calrsberg 2캔을 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주방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방이 다른 호스텔들에 비해 넓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와있었다. 영어로 수다를 떠는 외국인들 사이에 슬쩍 들어가 오븐에 고등어를 굽고 냄비―누가 공용 식기 아니랄까 봐 더러워서 박박 닦고 사용했다도 겨우 얻어 라면도 끓였다. 요리를 마친 순간 다행히 식탁에 자리가 생겨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조용히 먹고 싶었는데, 어느 40대 아저씨가 옆에 앉더니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직업을 물어보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목사라고 답하더니 내게 종교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니까 살짝 흥분한 듯, 신의 존재를 믿는지, 이 복잡한 세상이 겨우 빅뱅 따위로 인하여 생겨난 것에 정말 동의하는지 등 철학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안 그래도 한국어로 대화해도 힘든 판에, 영어로 말해야 한다니... 대충대충 대답하며 지친 모습을 내비치니, 그는 그제서야 질문을 멈추고 자신의 웹사이트와 추천하는 영상을 소개해준 뒤 떠났다. 이날만큼 라면이 퉁퉁 분 적은 없었다. 정리하고 방에 돌아가 씻은 뒤, 다시 로비로 내려와 사두었던 과자와 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일반 초록색 캔을 먼저 마시고, 호기심에 사 본 Carlsberg Master Brew를 마셔보았다. 뒷면에 쓰여있는 알코올 도수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마신 순간 바로 소맥이 떠올랐다. 그것도 소주 비율이 높은 소맥. 맥주 맛이 약하고 소주의 단 맛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율에서 소주가 한참 초과한 느낌이었다. Master Brew는 무슨 우리나라에 더 뛰어난 소맥 Master들이 많은데... 그래도 높은 알코올 도수 덕분에 기분 좋게 취하여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푹 잘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본 Frederiksberg 정원의 입구 | 알코올 도수가 10도를 넘는 캔맥주는 난생처음 보았다


둘째 날

덴마크 왕립도서관 - 뉘하운 - 프레드릭 교회 - 아말리엔보르 성 - Kastellet - 국립미술관 - 로젠보르크 성

 짐을 숙소에 맡기고 자전거를 빌렸다. 대여 시간이 3시간과 24시간밖에 없어 24시간 대여를 선택했다. 무려 130크로네나 해서 고민이 되었지만,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를 꼭 타보라는 블로그들을 믿고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자전거 열쇠를 받고 주차장으로 가니 피크닉용(?) 자전거―서양인 체형에 맞게 키운 타슈 같았다들이 늘어서 백여 대는 늘어서 있었다. 열쇠에 적인 번호와 맞는 자전거를 찾아 타고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아보았다. 안장이 낮고 핸들은 높아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안장을 조금 높여서 타도 어색함은 지울 수 없었다. 기어도 3단밖에 안 되었는데, 1단은 너무 약하고 3단은 너무 세서 사실상 고정 기어나 다름없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불편한 자전거를 타고 주차장을 나왔다.

 보통 도심에 자전거 도로가 있다면, 인도에 선을 찍 그어놓음으로써 절반을 자전거가 다니게 한다. 하지만 코펜하겐은 정반대였다. 차도 오른쪽 끝에 선을 그어놓아 가장 오른쪽 차선이 자전거 도로가 된다. 그렇기에 당연히 인도보다 살짝 낮다. 이 체계가 이상해서 그런지 아니면 자전거가 불편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우회전 차량과 겹치지 않을까, 차도의 신호등과 횡단보도의 신호등 중 무엇을 보아야 할까. 그러나 금방 익숙해진 뒤로부터는 오히려 이 방식이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자전거가 마치 차량 취급을 받으니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고, 사람과 부딪칠 확률도 더 낮았다. 적응하느라 느릿느릿 가는 나를 현지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추월해서 가곤 했다.

 먼저 덴마크 왕립도서관으로 갔다.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붙은 것처럼 건물 외벽은 검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내부도 들어가 보았는데, 이제껏 가본 북유럽의 도서관들 중에서 가장 크고 이용하기에도 편해 보였다. 둘러보다 보니 Canal Tour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뉘하운으로 갔다. 운하 가에 있는 주택들이 엄청 아름다웠다. 알록달록한 주택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고, 보트들도 쭉 정박해 있는 모습이 한두 세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베르겐과 달리 보수 공사를 하는 건물도 없어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투어가 시작하는 11시에 맞추어 보트에 탑승했다. 쉰 명 정도 탔던 거 같은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합쳐 절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보트를 타고 운하를 누비었다. 예쁜 주택들을 낮은 시선에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다만 이어폰도 불편하고 흥미도 없어서, 오디오 가이드는 포기하고고 뱃바람을 쐬며 주위를 구경했다. 막상 다른 곳들은 별로였고, 정박지인 뉘하운의 예쁜 주택들만 인상 깊었다.

자전거 도로가 차도 차선 1개보다도 넓은 곳도 있다 | 베르겐에서도 이런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코펜하겐이 대신 충족시켜 주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프레드릭 교회로 갔다. 안에 슬쩍 들어가 보았는데, 아래는 전형적인 성당 같았지만, 천장은 모스크 느낌이 살짝 났다. 돔 형태의 천장에 여러 점의 인물 그림이 두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오에는 바로 옆에 있는 아말리엔보르 성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고 하여 그전에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였다. 구글맵에서 후기가 좋은 BAK라는 샌드위치 집에 가서 ABC 샌드위치Avocado, Bacon, Chili의 약자로, 이름이 독특해서 확 끌렸다를 사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Subway의 쫄깃한 플랫 브래드에 익숙해진 내게 돌빵으로 된 샌드위치는 입에 왕창 넣고 씹기 버거웠다. 그래도 배고파서 꾸역꾸역 다 먹으며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였다. 영국의 근위병처럼 검은 브로콜리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저 못생긴 모자를 쓸 바에는 영국처럼 튀는 옷을 입어서 포인트라도 주지...

 이후 한참 자전거를 타고 Kastellet으로 갔다. 지도를 보면 오각별 모양으로, 요새처럼 생겼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성벽은 찾아보기 힘들고 드넓은 풀밭이 대부분이라 평화로운 공원 같았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서 공원을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그나마 중간중간 있는 포와 풍차가 '여기가 요새였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은 들게 했다. 호수 물가 쪽 풀밭은 각지게 해 놓은 점이 특이했다. 한 바퀴를 둘러보고 바닷가로 나갔다. 모두에게 허무함을 선사한다는 아담한 인어공주 동상과 슬쩍 눈만 맞추고 자전거를 댄 곳으로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딱 날이 개서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 작고 소중한 나의 인어공주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로젠베르크 성 주변에 있는 국립미술관에 가보았다. 그림들을 보자마자 갑자기 피곤해졌다. 미술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하도 소설들에 많이 나와 이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었는데, 그림에서 카인이 동물 뼈를 들고 아벨의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놓아, 아벨을 향한 질투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1시간 만에 둘러보고 나와 로젠베르크 성으로 갔다. 왕의 정원을 먼저 둘러보았는데, 꽃을 심어둔 곳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붉은 점들이 있는 백장미가 기억에 남는다. 성은 다소 작고 볼 게 많지 않았다. 왕실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해 두었지만, 다른 성이나 궁전들에 비해 초라했다. 마지막에 보았던 왕과 왕비의 왕관을 볼 수 있었는데, 흔히 왕관 하면 떠오르는 그 모양 그대로였다.

무덤덤한 카인과 적잖히 당황한 아벨의 표정도 인상적이다 | 카메라를 유리에 바짝 가져다 대고 찍을걸

 숙소로 돌아가기 전, 평점이 좋은 덴마크 식당인 Restaurant Karla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옆에 매우 특이한 동상이 있어 들어가기 전에 '뭐지?'하고 보다가 들어갔다. 중지만을 치켜들고 있는 큰 손을 중심으로 이를 둘러싼 네 명의 남성과 그 아래 네 마리의 돼지가 있었다. Q-Park라는 것을 짓는 데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설명문에 쓰여있었다. 중지는 글립토테크 미술관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정치적인 메시지를 이렇게 과격한 동상으로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덴마크의 표현의 자유에 놀랐다. 식당에 들어가서는, 남은 크로네를 다 쓸 겸 2가지의 요리를 시켰다. 먼저 청어 샐러드가 나왔는데, 청어가 양파와 하얀 소스랑 잘 어울려 생선 비린내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었다. 이후 구운 돼지고기가 나왔는데, 역시 느끼해서 맥주와 함께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역시 돼지고기는 우리나라가 제일 잘 다룬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우리나라였다면 하루 만에 철거되지 않았을까 | 메인 요리보다 애피타이저가 훨씬 더 맛있었다

 운하 맞은편으로 지고 있는 붉은 해를 감상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떠났다. 비행기가 계속 연발되어 3시간이 넘게 계속 공항에서 대기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틀 동안 내가 본 코펜하겐 도심은, 효율을 중시하고 전체적으로 예쁘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눈길을 끄는 곳들이 있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11일간의 북유럽 여행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전체적으로 평화로웠고, 아름다운 건물들도 많았다. 특히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있는 감라스탄과 뉘하운은 기억에 계속 남았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곳은 다름 아닌 송네 피오르였다. 빙하가 깎아낸 웅장한 협곡은 그저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다. 북유럽에 간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피오르는 꼭 한 번씩 보길 바란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인종차별을 당한 적도 없었다. 대부분 영어도 잘해 물어보면 친절히 영어로 답해주었다. 그들의 체격이 전체적으로 크긴 했지만, 폴란드 사람들과 별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름 아닌 물가였다.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정말 먹어봐야 하는 것들만 식당에서 먹어보고 나머지 끼니는 간단하게 하려고 해도 식당에서 끼니 당 5만 원 안팎으로 나오니까 돈이 줄줄 샜다. 그 외에도 교통비와 입장료들도 폴란드에 비해 훨씬 비쌌다. 화폐가 제각기 다른 것도 아쉬웠다. 다음 행선지인 영국도 물가가 만만치 않다고 해서, 돈 걱정을 열흘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직장인의 신분으로 스톡홀름과 노르웨이에 다시 와서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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