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날의 부채와 시

89. 꽃부리의 이야기 <2023년 6월 8일 >

by 임선영



옥황상제 던진 붓이

지상에 떨어져 꽃을 그렸나

부드럽고 불그레한 싹이 이리 곱다니

그 기세가 덕산 마음 휘저어

노을 가슴 취하게 하는구나

세월에 진 분가루는 이 봄 무슨 눈발이던가

푸른 비단 구름 위로 흐르고

淸淨한 法身 눈 같이 맑음이



산천초목 한가한 그 터에

머리 감고 가슴 닦아

한생을 도 닦듯 가고 있는 여인아

비록 현세에 때 묻은 자네이나

꿈길에서나 길 잃지 않고 곧은 길에 서서

모든 업장 씻고 가세나.



자네 어느 곳에서 마음 뉘어

세월을 보내고 있던가

한 생 별거 아닌 것을 이제 알 것 같지 않던가

한 인연 닿지 않아 별자리 땅자리니

강물이 물을 버려야

바다로 가는 것을 이제 알고 가네.



오늘 하루 홀로 앉아

먼 하늘 바라보니

그 바다에 춤추며 살아감도

한 생의 낙원이라

내 초가에 앉은 듯 한가로우니

숲 속의 새소리도

바람결에 봄 향기도

다 어우러진 예쁜 한 생이로구나.



내 마음 안에 있는 삼계

그곳도 이곳과 어찌 다를까

어느 한 곳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삶의 애절한 터

한 가족을 이룬 생명이

누리는 터 아름다운지고



손자 손녀 어디서 보도 사도 않던 것들

할머니 집은 놀이터라

물 줘 밥 줘 까까 줘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보물 덩어리

어떤 인연 내 곁에 와

이리 즐거운 마당놀이던가.



벌써 자네 날 찾아왔던가
오라 하지 않아도 소리 없이 찾아와 준 화소
역시 꽃 중에 가을 화태로고
화려하지 않은 듯 향기로운
그대 자태 이 계절을 가지고 놀겠지.



홀로 조는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 하던가

바로 옆 비파는 농익어 떨어질듯한데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한여름 그 볕에

헤아리어 바라보는 느긋함이여.



쭉 뻗은 그 굵직한 품

사람과 생명을 부르는 산 소리

소나무가 숲을 누리듯

불완전함을 누리고 사는 난

쉼 없이 달려온 건 아닌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진 않는지

뒤돌아 보는 시간이다.



내 마음에 담은 풍성한 과일들

어느 뉘 마음 안에 풍성히 들어앉을까

너를 그려놓고 주고 싶은 사랑 생각하니

한 여름 흥겨운 마음이

춤을 추는구나.



내 어이 붓 끝이 부귀로 흘렀던가
영화로운 기운이 길상을 줄 것 갔던가
향기 없이 푸짐한 그 모습
인생 통달한 모습 닮음
마음 들어 흘러간 붓끝이겠지


채송화도 아니요 백일홍도 아닌 네가
어찌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귀엽을 떨고 있나
붓끝 가는 데로 붓 염색 담기는 데로
휘들러 본 그 모습 귀엽기도 하구나.



그 자태 귀티가 흐르는구나
말없이 활짝 피어 백지면을 채운 자태
향기도 없으나 고운 빛 유혹 느낌이
눈 안에 가득하니 귀한 붓놀림이
살아 숨 쉬는 듯하는구나.


난초지초 붓 끝에서 어설프게 피었으나
그래도 그대는 형란이 로고
찬란한 아침 햇빛 받아 영롱한
그 옛적 고향 화단을 수놓던
장본인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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