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꽃부리의 이야기 <2025년 8월 4일 >
흘러가는 세월을 잡아 놓을 장사가 있던가.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들어와 있는 나이의 숫자가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생각 해 보다 화들짝 놀란들
무슨 소용이 없다.
도대체 숫자는 누가 만든 거야, 웃으며 떠들어도
없어지지 않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나이라는
인생의 나이테가 어느 사이 나를 칭칭 감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어미의 품에 의지하여 크고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 배우고 익혀서
사회라는 경쟁에서 성장을 해가며 던 지 것
던질 줄도 알고 삭일 일 삭일 줄도 아는
찬반과 성쇠의 갈림길을 배우며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의지하는 품을 의지하기도
하지만 비로소 홀로 서기도 한다.
남편이라는 동반자를 의지하지만 자식이라는
보호해야 할 의무감을 안게 되기도 한다.
이미 성숙을 경험하며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본다.
그 길에 들어서면 갈라서는 일들을 많이도
경험하게 된다.
아차 하면 인생을 같이하던 짝이 가기도 하고
갈라서게 되기도 하고 애지중지 카우던 자식도 품을 떠난다.
젊음도 세월 따라 떠나며 어디든 자리를 내 여주는
선택을 받는다.
이미 노인 대접을 받는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노인이 되었다는 어른이 되었다와 일치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노인과 어른은 동의어가 아니다.
어른은 노인은 될 수 있으나, 노인은 어른은 아니다.
나이 들어 또래들을 만나 놀다 보면
같은 노인인 나도 한결같이 느끼는 부분이 있다.
첫째 목소리가 커지고
둘째 말이 많아지고
셋째 고집이 상당히 세진다.
그래서 대부분에 노인들은 직접 나서서 무엇을
해결하러 들지 않고 대부분 해주려니 하며 기다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가끔 행사가 있어서 어른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스스로 밥을 가지려 가는 어른들이 많지가 않다.
"같다 주려니" 나는 노인인데 대접받으려 드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노인이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인생의 긴 경험의
노하우를 가지고 사람들을 배려하고 깨우치고 보살피는
여유로움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노인은 큰 어른이셔"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노인은 훈련하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노인이 되지만,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어른답지 않은 노인들이 전철을 타거나 공원 같은데서 너무도
많이 보기 때문이다.
무슨 나이를 훈장으로 여겨 무조건 세월로 어른 행세를 하는
어른들이 여기저기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이 함께 늙어가지 못하고
몸은 노인 마음은 아이가 언제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후덕 해지고 남을 포용하는 나눌 수 없던 것을 나누는 후덕함이
어른이 되는 것일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노인, 이미 고령화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이다.
친구들하고 전철을 타고 다니며, 어느 때는 영화도 같이 관람하며
"얘들아! 참 우리나라 살기 좋은 나라야,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공짜로 타고 다니는 전철 있으니 발이 되어주고
그 좋은 영화들을 반값에 볼 수 있으니 우리 복 받았지" 한다.
그 값을 충분이 나라에 보답하는 노인 어른이 많은 사회
그래야 허약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어른들의 지혜와 경륜이 무너져 가는 도미덕풍의 바람도 일으키어
요 사히 떠드는 핵무기 보다 더 강한 사회의 발판을 만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