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短想

114. 꽃부리의 이야기 <2010년 11월 23일>

by 임선영

새벽 시간 조용히 기도가 끝난 다음

요 며칠 사이 부산문학여행 시 하단성지에서 있었던

인연의 만남들을 돼 새기며 묘한 만남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부산 하단은 내가 믿는 종단의 뜻깊은 성적지이며 그 어려운 시기에

성직자가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제자가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만남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그것도 그다음 날이면 집을 헐고 새로운 성터로 지으려고 하는 날이었다.

여행을 같이 한 중 2명이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인연을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순간 가슴이 너무 벅찼다, 이 성스러운 만남의 장소에서 그립던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다니

누군가가 뒤에서 웃음 섞인 박수들을 치며

"누가 소설 쓰고 있는 거야" 한다.

소설처럼 이미 우리는 정해져 있는 길을 모르고 갔을

뿐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 인연은 중학교 시절 흠모했던 멋진 여선생이

같이 한 우리 친구여서 만났고....

한 인연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깊은 인연을 만나

짙은 포옹을 하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인연을 맺는다. 불교에서는 인연은

어떤 것을 연하여 일어난다 한다.

연기설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과 전생에 수 만 번을 만나야

현생에서 한 번의 옷깃을 스치는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만남은 얼마나 깊은 인연인가.

옷깃을 스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알아보고

만나서 얼싸안았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이 사람과는 운명일까

필연일까 이상한 마력에 끌리여 많은 생각과

많은 시간을 상념에 빠져 본 적이 나는 있다.

그것은 전생의 남아있는 고리인 것을 느끼기도 하였었다.


인연이란 하나의 축복된 기회라고 본다.

큰일을 공심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물질적인 부분은 생각도 못했던

장소에서 비 쏟아지듯 천록을 꼭 주시는 순리를 많이도 경험했으나

그 보다 더 큰 서로 상통하는 인연을 만나서 뜻을 맞추어 같이 간다는

일도 더 중요한 일임을 실감을 하며 가는 길이다.

인생이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존재다.

이 흐름 속에 소중한 작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일처럼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사람도 실력도 부족한 자리에서 서로 뜻을 비비고 마음을 모아서

처한 일을 해결해 가는 일은 당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를 것이다.

이런 인연의 만남을 통해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 흐름에 따라 지나간 것들은 묻어 두워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묻어 두었을 때 더 값지고 소중한 인연의 아름다움이다.

인연이란 마음 상태에 따라 움직이는 거다.

아름답게 지켜보면 아름답게 남는다.

일부러 무 자르듯 끊는다고 한들 끊을 수 없는 것이 인연이다.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의 소유보다는 정말 좋은 인연을 하나 만나기 위해,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말과 입과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는 인복이 없어하는 소리를 많이 한다.

인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하고의 관계에 저축을 하지 못한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인연은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고 나서야 안다.

내가 좋은 인연이 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또 내가 그런 인연이 되었을 때

상대도 나에게 좋은 인연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체험을

통해서 아는 일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전생에서

억만 겁의 인연이 금생에서 돌고 돌아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의 고리가 엮이는 것처럼 인연은 어쩌면

풀기 힘든 수학공식이 빼곡히 적힌 메비우스의 띠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뾰족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속담이 있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인연도 자신의 모난 점을 세게 때려주는 정 같은 역할을

하였기에 그 인연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찾아오는 인연이나 내가 찾아야 할 인연들은 모래알처럼 많다.

그 인연의 바다에서 유영하며 인연들을 사이로 헤엄치며 즐기는 일이야 말로

세상을 사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사람에 대해 알고자 했던 학문적인 어떠한 공부보다

페르소나 <persona>를 벗고 가식 없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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