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꽃부리의 이야기 <2015년 4월 25일 >
쏟아질 듯 나무마다 내려앉았던 꽃들 어느 사이 다 스러지고
정말 신선한 연둣빛 잎새들이 공중을 수놓은 날이다.
어느덧 오는 듯 가는 듯 와 버린 봄...
수채화 같은 연둣빛 투명한 물감을 풀어내고 있는 자연
조용히 바라보며 귀 기울이면 내 안에서도 수런수런
새 잎이 피어나는 것 같은 봄 날이다.
눈 때문에 병원에 들러 수술을 마치고 오다가 피곤한 몸을
잠시 쉬려 우리 부부는 아파트 뜰에 앉아 말없이 관찰하며
시들어가는 인간의 뜰을 소생시키며 담소를 한다.
" 여보 참 아름답네 연둣빛이"
"그러게 말이야 엊그제 목련꽃 벚꽃 살구꽃 더불어 피어 난리법석
이더니, 어느새, 모든 것이 일장춘몽 일세"
꿈같고 물 같이 흘러가는 시간 잡을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월 앞에 이겨 낼 장사는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휴식을 하는데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가 바람결에 쏠려온다.
냄새나는 쪽으로 눈을 돌려 보다 너무나도 깜짝 놀란다.
아니, 정말 좋은 가구들이 산더니 같이 쌓여있다.
쓰레기더미와 같이....
가까이 가서 둘러보며
"어머 정신들 나갔네요, 이렇게 좋은 가구들을 버리다니, 이것 주워갈까?"
"여보! 있는 것이나 간수 잘해, 아무리 좋아도 남 버린 것 주워 가서 뭐 하려고"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저렇게 좋은 물건을 어찌 쓰레기처럼 버렸을까?
망해서 나간 것일까?
쓸데없는 공상에 갑자기 시원한 연둣빛으로 물든 공간이 텁텁 해진다.
쓰레기를 버리려 나온 옆 동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으면서
" 뭘 그리 보고 계세요. 불쌍한 할머니가 먼데로 가셨나 보네요"
자총지종을 듣고 나니 안쓰러운 생각이 막 들어온다.
공군 장교까지 지내고 참 잘 차려 놓고 초창기부터 이 아파트에
사시던 멋쟁이 할머니였다 한다.
딸 둘이 있는데 사업한다 뭐 한다 해서 솔솔 엄마의 재산을 팔아가더니
그 쇼크 때문에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병원으로 옮겨 놓고 사는 집까지 팔아 가는데
엄마가 쓰던 그 좋은 짐은 다 필요가 없고 집에서 나온 쓰레기마저 제대로
치우지 않고 내다 던지고 도망가듯 돈만 챙기고 가버린 딸 들이였다.
돈만 필요했지 사람이기를 거부했던 자식들이었다.
폐품정리 하나를 제대로 안 해 놓고 도망가듯 가버린 딸 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마나 애지중지 제일 좋은 물건으로 집을 치장해 놓고 딸들 보실 피며 노후를 즐기려 했던
그 할머니, 어디 인생이 마음대로 되던가.
아름다웠던 그 모습도, 화려했던 그 가구들도, 귀여웠던 그 자식들도, 세월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속절없이 다 버려야 하고, 잊어버려야 하고, 흘러가야만
하는 인생의 여정, 도대체 우리 수중에 남는 것은 잊어버려야 하는 추억뿐인가.
정말 인생무상이며, 한 낮 바람처럼 지나가는 일장춘몽이었다.
나의 기대를 온전하게 채워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듯하다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기대로 서로에게 실망하고
섣부르게 돌아서거나 이별을 고하고 소식 단절의 기회를 같는다.
소중한 사랑과 그 사랑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일은 성을 지키는 일 같이 어려운
일인 듯하다.
해마다 부활하는 꽃들처럼 사랑은 숱한 이별에도 면역도 없이 새록새록 작은 가슴에
찾아들어와 기대를 걸며 삶을 꾸려간다.
그러나 참으로 아프게 갈라진 마음을 선물하고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지병으로
찾아와 자식들도 못 알아보고 그 모든 것들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사랑을 거절당한 삶들 가슴이 저리고 외로워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한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찬바람이 불어온다.
그렇게 아끼던 물건들이 무참히 마당에 내동댕이 처져 있어도 돌아볼 길도, 찾아볼 길도
기억조차 못하는 빈 손으로 알지도 못하는 먼 곳 미지의 기억들,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아무도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모르고 가는 것이다.
무엇을 더 욕심을 내고 무엇을 더 보태려 애를 쓸 것인가.
사는 동안 그냥 편안히 웃으며 그냥 어느 노래처럼 " 다 그런 거지" 하고 돌리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든 사람들은 무엇이 되고 싶어 그냥 안달을 한다.
그러나 이 만큼 살다 보니 잘 됐다고 으스댈 것도 없고 조금 낮은 자리에 있다고
슬퍼할 일도 아닌듯하다
내 있는 자리에서 보람을 느끼고 가정이라는 모임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이롭게 득이 될 수 있도록 건전한 조화를 이루어 간다면 자리가 어떠하든지 간에
인생을 향기롭게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겉치레에 너무 신경을 쓰며 살아온 우리들 다 버려져 있어도
돌아볼 길 없는 것들에 매달리며 조금만 역겨워지면 견디질 못하며 역정을 내며 살던 우리들 아니던가
결국 삶의 끝은 본질만이 그 사람의 무게로 남을 뿐인데 말이야.
마음에 얼룩 벗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며 살다 가던가.
둘러보며 가슴 치는 뜰에서의 우리 부부의 사유가 가슴에 종을 막 친다.
어제보다 오늘을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의지심 같지 말고, 자꾸자꾸 비우며 병들지
말고 살다가야 할 것 같다.
맞이한 오늘 하루 최선을 대해 열심히 살고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하여 또 열심히
살다 가야지....
모두가 다 일장춘몽인 삶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