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꽃부리의 이야기 < 2023년 어느 날 >
바람결에 티끌 / 임 선영
화선지에 펼쳐졌던 한 생
붓을 들고 생각하니
창해에 거품이었고
바람결에 티끌이었구나
사계절 푸르르며 곱게 서있던
늘 푸른 소나무에서
떨어진 가녀린 이파리 한 잎
보이지도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보잘것없는 한 잎으로 땅에 져서
먼 하늘을 보니
흰 구름으로 두둥실 떠다니다
흔적 없이 스러져간 구름 한 조각
최선을 다 하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상의 그것.
형란 / 임 선영
갖은 고초 거치며 태어난 인생
이기며 다독이며 가득하던 울음소리
툭툭 털고 창문 열고 마루에 서니
찬란한 밝음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보랏빛 형란이여
그대 그리 시작을 하였기에
인생 화선지에 그려진 모습
향기 따라 찾아온 인연의 춤사위
인생 골을 뒤엎는 춤사위구나.
울림 / 임 선영
정지한 듯 보이지만
한 순간도 숨을 멈추지 않는 자연
파초잎은 잎 생긴 데로
맑은 학 품어 안으며
많아지는 욕심
가지고 갈 힘 있던가
조용히 물어 온다
어느 사이 소리는 사라지고
울림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