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꽃부리의 이야기 <2014년 6월 5일>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서 긴 세월 부모 밑에 살기보다
두 배 가까이 같이 살아온 세월
미운 정 고운 정 잘도 다스리며 잘도 살아왔다.
나무와 꽃과 같은 존재인 부부 묵직하게 늘 기둥으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무에 붙어 피었다 졌다 떨어졌다, 다시 왔다
오만 재주를 다 부리며 살아온 듯하다.
나무나 꽃들에게도 가끔 팔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떨어진 자리에서 잘 지키고 자라서 피우고 열려서 또 다른 자신을
펼치고 날려 보낸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에도 조물주는 극복해야 할 과제를 준다
갑자기 더운 날씨 홍수, 천재지변의 가혹한 운명 앞에서 수많은 활란을 지켜내야 한다.
아무리 잘 살고 있다고 해도 이 집 저 집 문 열어 보면 어려운 점 없이 지나가는
집은 한 집도 없는듯하다.
일 없이 고해의 바다에서 그 형벌을 잘 받아 드리고 살아도 뒷말 있기에
남의 이목에 끄달리지 않고 가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끌리지 않고 꼿꼿이 살아 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 몇이나 될 것인가.
꽃은 뒤섞어 있는 꽃이 가장 많이 이쁘다 하였다.
수많은 역경으로 주워지는 인생, 그 삶의 굽이굽이를 자기의 확실한
생활 철학을 가지고 미동 없이 겸손하게 주워진 환경에 순응 하며
낮은 대로 임하며 같이 섞어져 살아가는 사람 참 만나기도 힘들고
찾아보아도 그리 흔치 않은 사람이다.
존경해야 할 이유를 지니고 사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다.
주워진 환경이 남이 부러워할 위치에 있고 살아온 환경이 꾸김이 없이
화려했어도 티 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늘 그 자리에서 겸손하게
주워진 삶을 잘도 꾸며가는 사람,
할 일 없어 무료한 날은 하루 종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는 사람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하루 종일 또드락 딱딱 고쳐서 새것을 만들어 놓는 사람
보살필 일이 있으면 자기가 할 일이듯 만지작 거리는 사람
그렇게 존경해야 할 이유를 달고 있는 겸손한 사람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의 외조자이다.
남편이라기보다 존경해야 될 사람이건만
때로는 짠돌이라는 마누라의 거친 말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안통, 화통, 도통한 것 같은 남자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우며 내조자의 자리를
떨어질 듯 말 듯 잘도 지켜왔다.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존경받을 행동을 한 지아비
그렇게 많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찰힉지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있다
고슴도치들은 한겨울을 지내기 위해 서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놀라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다가가고 상처 입고 물러나고 또 다가가면서 그들은 뭔가를 배운다.
바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였다.
부부 관계도 아마 그들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의 거리를 배우기 위해 서로의 곳곳이
상처 투성이가 가 될지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상처투성이의 마음에 어여쁘고 예쁜 작은 꽃이 피어날 때쯤이면
우리는 주름 투성이가 된 채 서로 다른 개체가
하나가 되어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부부의 꽃으로 해로하게 되는가 보다
이제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아도 찔리지 않고 존경해야 할 이유를 단 지아비로서....
바로 행복을 보는 눈이 생겼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는 그 생활에서 부수적으로 우리만의 환경을 만들어 간다.
자식이 배우고 손녀가 배우는 우리 집의 독특한 삶의 철학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모두가 길들여지는 세월이 되는 것이다.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은 흉내를 내고 그대로 따른다더니 우리 집 손녀는
늘 손안에 무언가 들고 들어온다.
하루는 한 주먹 가까이 못을 주워 오지를 않나 어느 날은 누군가 예쁜 형광등
못으로 쓰던 스텐 꽂이를 한 주먹 주워오며
"자 할아버지 선물, 우리 집 보물상자에 넣어야지"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시고는 껄껄 웃으면서 무엇이든 가지고 들어오는 놈은
싹수가 있다고 하신다.
어려서부터 자꾸 집에 것을 같다가 누구를 주는 아이는 집안 살림을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하면서
"아이고 요것이 자꾸 뭐든지 물고 들어온다 말이야, 기특하기 이를 데 없고만, 보탤 놈이야"
우리 집에서 부르는 보물상자 1호가 있다. 이것저것 길가에 가다 작은 못이라고 떨어져 있으면 주워다가
모아 놓은 고물 손 그릇, 집안에 소소한 물건이 고장이 나면 외조자는
베란다에 가서 이 상자를 냉큼 들고 들어온다.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면서 뒤적거리다 보면 필요한것이 꼭 있어서 안 고쳐지는 것이 없다.
분수를 지킨다는 것은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자포자기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자기가 처한 현재의 상황에 불평 불만하지 않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분수를 지키고 사는 것 일 것이다.
퇴직 후 소일거리 없는 노후 생활을 고칠 수 있는 것들을 손대서 절약하며 쓰고 사는
생활의 실천, 이만큼 이루어 놓은 노후의 넉넉한 생활이 어쩌면
물건 하나하나 작은 것이라고 소중하게 여겨서 고치고 다듬어 쓰며 절약생활하는 정신
에서 왔다는 확신이 늘 드는 부분이다.
분수에 편안한 생활 일신에 욕됨이 없다는 것과 같이
만사의 일들이 복족족혜족족 해지는 것 같다.
오늘은 일주일마다 있는 분리수거의 날이다.
매주 버리는 날이지만 늘 어디서 그리 많이 나오는지
아침만 되면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다.
아파트 분리수거날 여기저기 버려진 성성한 물건들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차는
노부부 어른이 하시는 말씀이다..
"참 큰일 이제 우리 어려워 시래기죽 끊여먹던 때가 멀지 않은 엊그제인데 언제 이레 부자 된 거야"
"요 사히 젊은 사람들 물건을 너무 쉽게 버려요, 빌어먹기 딱 십상이에요."
아기는 안 낳지 이렇게 편안한 아파트에서 새 물건만 쓸라고 하지, 도대체
고생들을 안 하려 하니 우리 노인들 설 자리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으신다.
이제 노인의 대열에 낀 우리도 할 말이 없다.
너무 많은 쓸만한 물건이 버려진 자리에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외조자는 버려진 우산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이제는 잔소리해봐야 듣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같이 들어준다.
금세 30여분 꼬무락꼬무락 우리 집 보물상자를 뒤적 쥐적하고 나면 새 우산으로 변신을 한다.
장식장 옆에 세워 놓고 입버릇처럼
"나는 오늘 밥값은 했네, 나 오늘 안 놀았어, 여보 법당에 같다 놓든 필요한데 선물하게"
고쳐진 우산을 활짝 펴 들고 뱅뱅 돌리며 큰 물건을 사기라도 한 듯
흐뭇한 표정으로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어느 사이 고쳐진 우산 5개가 장식장 구석에 세워진다.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것은
시각적 미에 일차적 가치를 두게 된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어떻게 생겼느냐가 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어떤 아름다운 판단을 내리고 어떤 아름다운 결정을 해서
어떻게 아름답게 행동에 옮기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본다.
그러할 경우 그 사람의 삶이 비록 남이 버려놓은 우산을 고쳐놓는 삶이라 해도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고 본다.
인생은 교향악이다,
인생의 각각의 순간들이 자신을 턱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절약을 행동으로 인생 합창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노래를 오늘 하루 충실히 살면서 들을 수 있을 때 놀라운 삶의 활력소가
생기고 큰 축복의 삶이 자기가 진정 낮아졌을 때 우리는 그 행운을 잡는 순간을 맞아
감사생활 그러면서 우리는 곱게 맑고 훈훈한 삶을 살다 가게 되리라 믿는다.
잇몸 드러나도록 활짝 웃으며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손녀의 사랑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나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주워진 커다란 숙제이면서 전생의 빚 갚음이다.
해마다 부활하는 저 꽃들처럼 사랑은 숱한 이별에 면역도 없이 새록새록
작은 가슴에 지병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 빼도 박도 못하는 남은 상처를 깊이 감추고 갈라진 마음들을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현재 당하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고 가는 것이다.
부활한 꽃과 같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선연의 인연 찔레꽃 보다 고운 사랑
로댕의 말처럼
우리는 늘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내 인연으로 내 옆에 있으나 그 아름다운 생명체 어찌 내 것이던가,
잠시 맡겨서 잘 키워내라는 조물주의 지엄한 명령 소리가 들린다.
아가! 고운 별아 무럭무럭 예쁘고 착하게 자라거라
너의 겨울 같은 가슴에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되리니
그 햇살 사이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라
존경해야 할 할아버지의 손녀
사랑이 기울기 전에
마음껏 그 사랑받으렴
그 할아버지에 그 손녀 그 소리 멋지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