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꽃부리의 이야기 <2023년 12월 23일>
아파트 뒷 길을 운동삼아 걷는다.
흰 눈이 하얗게 쌓인 체 빈 바람 소리만 들리는 자리 귀가 시려도 난 그 소리마저
잃을까 쫑긋이 귀를 세우고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을 친구 삼아 걷는다.
어린 시절 새벽 우물가에 나와 세수를 할 양이면 제일 먼저 찾아와 우물가 나무에 앉아
"찌지구찌지구" 무어라 지저귀며 귀를 열어주고 가슴을 열어주고 하늘을 보게 하던
그 소리 없어진 지 오래인 숲 길을 걸으며 난 이런 생각을 한다.
왜 그 아름다운 소리들이 사라졌을까?
오늘도 누군가 세상 소리가 싫어 떠나간 사람의 뉴스를 전한다.
못살겠다고 소리치는 사람의 소리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치유마저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이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허리가 아파서 다리가 아파서 외로워서 답답해서 추위 속에서 무언가 얻으려고
육천 보 만 보를 걸으며 같이 하고 있는 짝 외에 내가 찾고 같이하고 싶은 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나를 사랑하던 것들은 하나 둘 다시 돌아 올 수없는 요단강을 건너갔고
그 강가 언저리를 서성이며 잃어 간 소리를 찾고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떤 외로움을
견디려 이 거리를 걷고 있는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더 잘 살기 위한 물질의 무기에 지쳐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회
속에서 정서라는 말로 얼룩진 인간을 그나마 의지하며 살리려 하는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찾더란 말이던가.
치매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회 서로 사랑하는 정겨움이 사라져 외로움에
지쳐 병들어 있는 사람들, 물질의 화려함의 오판에 빠져 사랑도 비움도 도리도
다 내 팽개쳐진 것 같은 삭막한 도시의 생활 속에서 웃음과 정 마저 식구들 사이에서
없어지게 만드는 DDT는 왜 만들어졌는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해로운 곤충
박멸이라는 명명하에 만들어 놓은 것들이 이제는 똑같은 세상에 똑같은 생명체인
사람에게 축적되어
여지없이 면역성을 파괴하고 정서를 파괴하고 결국은 도덕을 파괴하는 사회......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 허전함을 이 쓸쓸한 거리를 걷는 정이 필요한 사람들은.....
흰 눈 위를 뽀드득뽀드득 거리며 걸으며 앙상한 흰 눈 쌓인 나뭇가지 사이를
졸졸 쫓아 나르며 노래 부르던 참새마저 없어진 거리 이 삭막한 거리를 정이
가득한 가슴을 안은 인간이란 제조물은 무엇을 향해 무엇을 찾으려
걷더란 말이던가. 그냥 슬프다.
그 슬픈 날 찾아온 친구라는 선물, 지저귐에 귀 기울일 수 있고
지지배배 지저길 수 있어 나이 들어 과학으로 먹을 수 없는 천연 약을 흡입하는 날
자식들은 수다라 하지만 그렇게 인생의 끝자리에서 그 멋진 날들을 되찾아서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는 보약을 먹는 날이었다.
그 멋진 날들을 보낸 아이들이 늙어서 모여있는 자리, 지나간 옛이야기 친구들의
연애담은 추억으로 남아 내 일도 아니지만 그냥 재밌고 푸근하다.
물질이 크게 갖추워지지 않았어도 나도 살게, 나도 낼게 그 친구가 산 강원도
옹심이는 왜 그리 고소한 지....
"야! 나도 오늘 저녁은 팥죽으로 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던 찹쌀 옹심이 가득한 팥죽 한 그릇 속에 고향 정이
철철 넘쳐 난다.
그 속에서 친구들은 정호승의 "수선화" 시에 나오는 나뭇가지에 외로워서 앉아있는
가슴 검은 도요새가 아니라 수다를 떨며 마음을 열어가며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참새 친구들이 된다.
친구들을 위해 얼마를 쓰기로 결심했다는 한 친구는 전생 무슨 복을 지였기에
그런 복을 짓는 사람 되었나.
"내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 어찌 살고 있나를 보고
내 후생 어찌 될까 알고 싶다면 내 지금 어찌 풀고 사나 보라" 했지 않던가
착하고 슬기로운 심성들이 모인 즐겁고 흐뭇한 수다 가득한 자리 지구상의
한 생명체인 우리들은 아직 그래도
"지지구지지구" 소리를 내며 즐거운 수다로 막혔던 가슴 들을 벗이라는 이름을
턱 걸치고 찾아와서 지저귄다.
그 소리소리소리...... 난 이 즐거운 날 자연의 살아있는 음악 소리로 들린다.
친구들 자네들이 보약일세. 그 보약 주는 그대들 같이하니 이 아니 즐겁던가....
나이 들어 가져야 할 보약을 다 지닌 우리 친구들......
건강하세나.... 자네들이 이 삭막한 자연의 생명체인 건강을 지켜주는 보배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