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꽃부리의 이야기 < 2012년 2월 5일>
막내 아들 손녀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다.
아침 일찍부터 아파트 뜰안에 장사들이 모였다.
이사 온지 10년이 넘으니 오는 장사까지도 나를 보면 꾸벅 절을 한다.
그중 잠옷 장사인 노부부가 반갑게 지나가는 나를 붙든다.
"새로운 여름 잠옷 들어 왔어요, 보고 가세요"
어디 선물 보낼것도 있고 해서 들려서 뒤적 뒤적 고르고 있으니
내 또래의 손주 보는 할마시들이 모여든다.
순식간에 5~6명이 모여 들었다.
"어메 또 손주 보는 것여"
" 어찌 헌다요, 자식 많이 낳은 죄지"
"자식을 날려면 저 장미 할머니 처럼 낳아야 되야, 딸 8명이 가진 호강 다 시키잖여"
80 조금 넘어 보이는 피부가 뽀얀 미인 할머니가 팔에 걸고 목에 걸고 손가락에 걸고
안경까지 걸은 할머니가 베실베실 웃으며 나이도 잊은듯 빨간 립스틱
바른 입을 활짝 벌리며 웃으신다.
다른 할머니가 그리 걸고 다니면 지저분 해 보일텐데 어쩐지 밉상 아닌 할머니다.
"내가 그렇게 부러운겨, 그 고생을 혓씅께 당연 한 거제"
사람들만 만나면 말이 많아지는 노인들의 속성이 또 말 장마당을 만든다.
말도 말란다, 그 고생 자식 열 중 아들이 둘인데 아들 하나 홍역으로 죽고
막내 아들 하나 겨우 건져서 딸 8명하고 9 자식을 키우는데 삼시 세끼니
숟가락 놓고 밥하고 밥 푸다가 세월 다 갔단다.
항상 밥을 푸면 숫자를 세다가 잃어 버려 꼭 밥이 한 공기를 모자라게 펏단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5째 딸이 행동이 느린지 늘 밥이 없다고 징징 거리며
" 엄마! 나는 주워 온 딸여" 하고 소리를 지르며 대들고 밥을 안 먹고 학교를
가던 일이 엊그제 같단다.
" 아! 그런디 글씨 그 딸이 징그럽게 제일 잘 산당게, 매달 용돈을 백만원씩
준단말여, 내 그래서 늙으막에 호강 허제"
입에 침이 고여가며 눈 웃음을 살살 치며 아침부터 자랑이 깨진다.
어떤 할머니가 한 수 더 거든다.
" 요새 세상은 딸이 최고랑게, 딸 많이 두워서 좋것수 어찌 자식을 그리 많이 두웠수"
" 옛날에는 저녁 설것이 하고 나면 뭐 캄캄헌디 헐일 있간디, 젊기는 허것다 자식 만드는 일
밖에 더 있어"
"징그랍제, 징그러"
흐흐흐 가개 아저씨가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도 부끄런지도 모르고 떠든다.
한마디 더 한다.
"그리도요 뭐니 뭐니 혀도 자식 농사가 최고여요, 그 고생 했어도 딸 자식들 여덟이 모이니
내가 이리 편헌거 아니것소"
빨간 줄무뉘 원피스에 걸 수 있는데는 다 걸은 빨간 립스틱 할머니의 수다가 오늘 아침
왜 그리 부러워 보이는지.
이 각박한 세상에 노인의 집으로 보내지지 않고 길거리에 나온 이웃에게 자식 자랑 할 정도면
그 할머니의 노후가 얼마나 행복한지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흠메 징그란거, 나도 저 나이에 저 정도만 되야도 좋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