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냄새

229. 꽃부리의 이야기 <2019년 8월 19일>

by 임선영

그냥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이슬비처럼 운다.

밥 먹는 것도 슬프고, 사람 만나는 것도 슬퍼서 젖어서 운다.

가끔 햇살 같은 웃음소리로 할머니 불러대며 할머니는

하늘나라 가지 말라고 옷깃을 잡고 사정하는 눈길이 너무 안쓰러워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끈, 뿌리칠 수 없는 어머니가 된 전생의 업

할머니가 된 전생의 인연의 고리를 감당해야 한다.

그냥 손녀의 손을 잡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길을 걷는다.

강해져야 한다는 말은 지금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냥 실컷 울고 싶다.

같이 울어주는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여름 소낙비 그치고 나더니 한낮 쓰르라미 가 소낙비처럼 울어댄다. 벌써.

어느 사이 빗소리에 젖어 있던 계절이 살금살금 여기까지 왔나.

계절이 가을로 걸어가는 것조차 소리 속에 있다.

변화는 대 부분 울음으로 온다.

인간도 울음을 통해 성장하는 것 같이....

이 나이에 또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나도 서러운 일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정을 얻어 의지하고 주고 가져서 얻어진 존재이다.

조물주가 무상으로 던져 준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얻어지는 사랑과 정은

감동이라는 것을 낳는다.

그리고 그 감동은 인간의 마음, 눈, 입, 손을 움직이게 한다.

요동치듯 출렁이는 움직임 속에서 하나 되는 어떤 존재를 만들어 낸다.

마음과 손이 하나 될 때 그 놀림은 글을 잉태하여 손으로 해산을 한다.

인간이 감동을 통해 하나 되어 잉태를 만들고 정성 속에 낳고 키워진 귀중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은 새로운 감동 속에 휩싸이며 위로받으며 나날을 보낸다.

감동받은 가슴을 적어 내려간 글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도 하고 슬픈 냄새, 처절한 냄새

피 빛의 사악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 어울림을 매섭게 뿌리치는 정에 너무나 가련할 정도로 선천적으로 연약한 나 어찌할 수가 없다.

큰 유명세는 타지 않았지만 글을 쓰게 된 지 어연 30년이 넘은 나는 못 견디게 그리운 병,

글 냄새이다.

소리로 자연의 변화가 오는 기미가 보이면 미치도록 꿈틀거리는 글 냄새 때문에 절필했다가

또 쓰게 되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팔자다.

그리운 글 냄새, 각자 개성이 다른 글 속에서는 오감의 맛이 감칠맛 나게

널려져 있다.

징그러울 정도로 예민하고 민감한 내 육감의 감각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 냄새는

어떤 글은 멀리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수십 번을 읽으며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평형을 유지 못하고 수시로 울부짖고 요동치는 마음 4계절 그 변화를 견뎌내며

인간 역시 자연에 한 일부라는 확실한 증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요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나는 또 사각사각 펜 소리를 내며 하얀 여백에

힘 있는 한 획을 치듯 써 내려간다.

백지에 정을 낳는다, 그지없고 맑고 고운 쌉쌀한 풀냄새 같은 정을 낳는다.

그리고 억제할 수 없는 어떤 짓눌림의 해방을 위해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봄 들판 종달새 소리, 어린 시절 뛰놀던 들판에

봄이 찾아들게 하였고, 뇌성병력과 소낙비로 퍼붓던 하늘의 눈물, 여름은 굵은 낙수물

소리를 내는 처마 끝을 만든다.

비를 맞으며 보금자리에 있던 엄마를 향해 뛰어오던

어린 시절의 꿈결 같은 여름 추억, 가끔은 나를 못살게 하는 회상병자를 만들고 그것이

지금도 나를 애 어른으로 살게 한다.

여름비를 맞으며 그렇게 달려 올 손녀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품을 나는 또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생각하며 정신을 차린다.


계절의 울음 속에서 소리 없이 내실을 살 찌우며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 가는 초록의 산과 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로 긴 시름을 달래며 열매는 익어가는 가을을 맞이하듯이 말이다..

울음으로 보대끼며 보내던 계절의 변화가 준 단 열매를 욕심 없이

"가거라, 새로운 내 세계로, 자립해야지" 툴툴 땅에 떨어트린다.

세찬 눈보라 속에 아름답던 자연은 그렇게 하고도 속 죄의 흰 옷을 입고 돌아 올 계절

앞에 미련 없이 죄인처럼 나목으로 선다.

인간도 흰옷을 입고 떠나는 것처럼, 욱 체는 떠났지만

영혼만 남아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기다리며 자연색으로부터 옷을

벗고 잠들지 않은 채 세찬 눈보라 속에서 속죄의 눈물을 흘린다.

소리 없이 눈물처럼 휘날리는 겨울밤의 눈송이 우리는 누구나 그 밤을 흔적 없는 발 길로 걸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눈송이를 바라보며 마음 언저리에 무엇인가 스멀스멀 스쳐가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무상과 허무로 허물어진 나를 느끼며 어디론가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이며

회상의 그늘에서 옛정을 그리며 추억의 글 한 줄로 낭만의 피안을 생각하며

남몰래 볼을 붉히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상황에 취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를 거기에 묻는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는 것 바로 글이다.

우리는 왜 새삼스럽게 지나간 옛것들을 그리며 희로애락의 향기에 취하게 되는가?

때로는 인간의 기쁨을 생각하며 피기도 하고, 죽음을 생각하며 심리적 갈등 속에서

애써 피어놓은 꽃을 또 스스로 지게 하는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다달을 수 없는 이 자연의 신비를, 인간의 심리 상태를 우리는 왜 새삼스럽게

돌아보며 그리워하는가?.

이 지나칠 수 없는 감정을 간직하고 싶은 심리적 갈등들이 글 냄새와 글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 맛을 읽어가는 일은 일상적 삶의 속박으로부터 한 길을 벗어날 수 있고

왜곡된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여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목적지의 기차표를 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괴나리봇짐을 지고 먼 길 채비를 하고 가는 것이 제격인가 보다.

단 몇 시간에 가는 길이 아니라 몇 달이고 몇 년을 고생하며 가는 길과 같은 것일 것이다.

이러한 여행을 한 자 만이 글의 참된 세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참된 글 맛에 빠질 수 있다면...

글 속에서 맑은 향기와 냄새를 흐르게 하려면 마음의 수련, 인생의 연마를 통해 고결한 영혼을

간직해야 할 것임을 알 것 같다.

글의 바탕은 사상과 철학과 지식이 아니다.

내가 발견하고 터득한 진실과 깨달음의 미소이길 나는 바란다,

슬픔 속에 거품처럼 일어나는 이 맛 그래야만 글 맛을 알게 되지 않을까?

오늘도 글 맛이 그리워 여기에 이렇게 와 있다.

눈물을 참고 글 냄새를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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