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소통하고 있는가?

231. 꽃부리의 이야기 <2016년 6월 28일>

by 임선영



남편이 그런다.

여보! 나 오늘 뭐 입고 갈까?

몇 벌 되지 않아 구색이 맞지 않는 자신의 옷을 아내한테 코디해 달란다.

구닥다리 옷을 바꾸자고 쇼핑 가자고 우겨도

내 처지에 이 옷으로 만족한다고 그냥 기를 쓰는 똥고집쟁이

우리 집 아저씨 미운 생각이 잠깐 들지만

이것도 소통인가? 생각 들어 들쑥 나는 화를 꼭 잡고

윗도리에 맞추어 바지를 골라주며

"당신은 아무거나 입어도 어울려, 받쳐주는 얼굴이 있으니까"

능숙한 상대방의 화답에 기분 좋아진 상대방은 콧노래를 부르며

유행 다 지난 촌스런 옷을 입으며 씽긋 웃는다.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행복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가는 간이역에 있는 것이다.

추상명사가 아닌 행복, 보통이 느끼는 보통명사이다.

거스르지 않고 마음 잠깐 돌려 칭찬으로 기쁘게 해 주는 순간의 선택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질문의 차원에서 멋지게 반응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잘해 나가는 소통이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첫째 화답은


내용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말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다.

가끔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아무거나 입지, 몇 가지 안 되는 옷으로

별것을 다 묻는다고 역정을 내면 상대방은 늘

"이 말도 안 하면 나는 할 말이 없잖아, 받아줘" 한다.

하찮은 일이라도 물어보고 대답하는 작은 소통에서 심심한 시간을

없애고 눈과 귀와 입을 맞추자는 말이다.

소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둘째 화답은


감정에 대한 반응이다.

질문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심심하고 외로운 질문자의 마음을 이해

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이다.

겉치레의 옷보다는 마누라와 하찮은 일로라도 서로 마음을 멋지게

주고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의 마음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던져주는 반응, 관계의 작은 자리이다.

곧 감정에 대한 표현에 공감을 주고받는 깊은 이해 바로 소통이다.


셋째 화답은


소리를 듣고 반응을 하기 위한 눈 맞춤이다.

서로 눈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준다는 반사작용

무시하지 않고 무심하지 않고 느끼고 있다는 눈 맞춤에

혼자가 아니라는 정을 느낄 것이다.

고독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의 눈빛의 소통이다.


눈과 입과 마음으로 같이하는 작은 소통은 가정을 안식처로

훈훈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어찌 이 일이 가정의 일만이겠는가?

정말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이 시대의 각 개인이나 나라 차원에서도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서로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고, 아파하는 일

다독거려 주는 일이 정지되어있는 사회의 빠른 변질의 속도가 요사이

시대의 민낯이 아니던가


그냥 동문서답만 해 가는 뉴스 가득한 신문, 방송들 멘트, 아침마다

이웃은 사람이 무서워 아파트 문을 꽁꽁 닫고 만날 길 없고

펼치지는 소리, 문장의 지루한 공해, 순간의 느낌만을 쓰고 말하는 앵무새들

위정자, 꾼들의 말말말....

가득한 시대의 상처 도대체 이 설움을 어쩌란 말인가.

읽을거리, 들을 거리, 본받을 거리, 고쳐할 거리 가득한 바쁜 삶 속에서의 알지 못하는

그 고독 어찌 풀 것인가 가슴 답답할 때 많은 삶의 터이다.

의지 할 수 있는 경청과 이해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 그 인간에 대한

존중은 어디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관심을 가지고 매만져 주는 충고와 해법보다는

이야기와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

해 주는 무관심이 아닌 관심을 가져 주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 아니던가?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경청도 공감도 이해도 존중도 희미해져 가는데 익숙한

시대의 흐름에서 한 가정의 소통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지는 삶의 기본질서, 하찮은 일로라도 존중해주고, 관심 가져주는 일로

입 맞추고, 눈 맞추고, 마음 같이 하는 가정이 돼야 하지 않은가?

세계가 하나 된 지금. 세계의 근본은 한 나라들이고, 한 나라의 근본은 작은 가정 하나하나

일진대 그 가정의 질서가 무너져서야 어찌 나라가 바로 설것이며, 세계의 질서가 제대로 설 것인가.

도미덕풍의 맛을 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오는 불행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얼마나 큰 재앙이 되겠는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같이 하는 우리 우리들

정말 작은 일부터 소통하고 있는가?

큰 숙제로 생각해 보며 노력해 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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