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꽃부리의 이야기 < 2013년 3월 13일>
조용한 아침 식구들이 곤히 자고 있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홀연히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하고 기도로써
하루를 열고 시작하는 내 몸짓은 어쩌면 내가 잘 지켜가는
마지막 자산이며 한 편의 시다.
사람은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순간이
거의 매일매일 지나간다.
그렇게 흔들리며 세상을 걸어간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흔들림을 주체할 길 없어 수필이라는 시라는
매체를 통해 그 흔들리는 나를 털고 맑은 아침 기도로 참회하고
다독이며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소리로도 느낌으로도 주위의 펄럭거림으로 이루어지는 늘 흔들리는
조용하지 못한 가슴을 늘 기도가 도와준다.
돌이켜보니 신앙을 가진 20여 년 내 삶의 길목을 꿋꿋하게 지켜준 것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며 하늘에 약속하는 다짐 나만의
무언의 기도의 약속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개체가 전체를 위해 희생하며 염원 할 수 있는
통로는 기도가 으뜸 아닌가 한다.
밤새 깊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아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옆에서 깊이 잠 듯한 어린 손녀의 잠꼬대에서 찾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아픈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뻗어 줄 수 있는 어미라는 이 자리...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소극적이지만
그 애들을 위해 한 줄의 기도라도 온 힘을 다 해 해주는 일이고
한 줄의 말 한마디라도 진정한 향기를 담아 따뜻이 대해주는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기도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 일 것이다.
한 줄의 기도에도 진실한 향기가 나도록 말이다.
우리들은 한 줄의 답글을 읽을 때도 그 속에 향기와 진실이 있나
없나 가 보이지 않던가.
참 사람이라는 것은 영물이다. 영혼을 가진 영물.
그러하거늘 혼을 다해 바치는 간절한 기도에서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는 나 자신과 나를 통해
기도 드려지는 상대의 영혼까지도 다스려지리라 믿는다.
어느 해 인가는 집 베란다에 가득한 난 에서 꽃이 피지 않아서
정성그럽게 일주일에 물 한 번씩을 주면서 대화를 했다.
" 이 난 전체에서 꽃이 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들아! 제발 좀
그리해라" 하면서 늘 물을 준 일이 있다.
기적처럼 그다음 해에 난 전체에 꽃이 피어 집안 가득 난향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한 일이 있다.
나무나 꽃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는 현장이었다.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동물보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감각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는
감동적인 현장 이었으리라.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침묵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대지 않고
조용히 떠들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 선물하며 수분으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
시키는 영혼이 바로 식물이 아니던가.
사람으로 치면 선비의 가락이다.
가끔 역사 속에서도, 정치에서도, 처한 여러 곳에서 그러한
사람을 드물게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향기로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들으니 얼마나 격이 떨어지는
존재인가.
침묵하여도 흐름으로 상대방을 알아보는 격조 높은 인격을
갖추기란 참으로 어렵다.
꽃이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끼는 어쩌면 사람보다
한 차원 높은 영물이라는 진한 느낌은 왜일까?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 배울 바가 너무나 많은듯하다.
꽃도 그러하거늘 만물의 영장인 인간관계에서의
한 줄의 기도 속에서도
한 줄의 글 속에서도
향기와 진실이 묻어나게 하는 일은
침묵 속에서 전하는 우주 생명들과의 서로 존중하고 위해주고
사랑하는 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가도 향기는 남기 때문이다.
봄은 가도 꽃의 자취 진하게 남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