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봄나들이

8. 꽃부리의 이야기 (2020년 3월 31일)

by 임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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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답답한 매일매일 가뜩이나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외조자가

오늘은 아이들하고 산에 간다 하기에 나도 운동 겸 따라나섰다.

모처럼의 산행이라 "슬슬 걸어가지 뭐" 하며 자신 있게

따라나섰지만 좀 걱정은 되었다.

막상 도착하니 집에 갇혀있던 인파들이 휴일을 맞이하여 식구들과 인산인해이다.

마스크들로 무장을 한채 산길들을 걷는 모습들이 정말 웃기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맑은 공기를 쐬려고 마스크를 벗고 걷다가 사람들의 스침이 너무 많으니

겁이 덜컥 나서 다시 쓰고 걸었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여 마시고 내쉬고 해야 되는데 이 무슨 광경인가

생각하니 사람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진리의 형벌을 지금 우리는

맞이하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정말 확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던 산 길이 아니고 사람들을 피하여 좀 한적한 곳으로 오르니

가팔라서 생각 보다 숨이 찾았다.

가다가 그 코스의 끝머리에서 만난 봄의 환희 진달래꽃 무리를 만나

꽃 속에 여인이 되어 사진을 찰칵 찍었다.

꽃은 계절의 여왕이다. 그 꽃으로 인해 계절을 알게 되고 맛게 되고 같이하며

환희에 쌓인다. 자연이 주는 상하 구별 없이 선물하는

멋진 선물 속에서 행복한 산행이다.

정상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사랑하는 아들들과 사진을 남긴다.

어느 사이 우람하게 크고 나이 들어가는 자식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호하며

가는 산행 길은 인연들이 없었다면 이 길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것들이 있어 제3의 인연들이 나타나 할머니 집이라고 와서

웃고 떠들고 지지배배 짓어대는 모습들이

힘은 들어도 삶의 활력소이고 제대로 숨을 쉬며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참으로 다행이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다.

어찌 다행 자리들을 나름대로 잘 지키며 가정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항상 대하며 우리 내외는 늘 항상

"여보 우리 자식들이 대단해요, 우리 신세 크게 안 지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고럼고럼 이것이 우리의 인과의 대가야, 전생에 잘못 살지는 않은 것 같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봄날처럼 따스하고 경쾌하기만 하다.

"엄마 아빠 두 분 거기 서요, 사진 한 방 찍어야지"

두 노인네가 새롭게 활짝 핀 어린 개나리 옆에 섰다.

몸은 늙었어도 꽃 속에서 팔짱 끼고 추억을 남기는 마음은

늙지 않아 폼을 잡아보나 마음은 그대로이나 몸은 이미

수를 다해 나온 사진을 보니 와! 내 이리 늙었단 말인가

실망이 말이 아니다. 그저 놓고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우리는 미미한 인간일 뿐이다.

어찌 무언으로 소리 없이 닦아주고 쓸어주고 먹여주는

우주 자연의 무상의 내려줌을 감히 흉내를 낼 수 있다 하던가.

코로나 여파로 거리 두기를 하며 자유가 봉쇄되어 빼도 박도 못하는

인간들의 신세는 아마 우리가 익히 익혀온 하늘의 벌인 지도 모른다.

물질이 난무 해지니 교만 해지고 생명을 경시하고 고운 것 좋은 것을 보면

돈으로 해결하는 생명 있는 것들을 함부로 하고 죽이고 먹으며

어리석은 우리들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모든 좌복을 짓는바

현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며 뽐내지만

소리 없는 허공법계는 무형한 가운데 모든 것을 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려치는

소리 없는 처벌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당해내지 못하는

무서운 형벌로 온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 너희들도 받아보아라 하는 소리 없는 총성의 세계인들의 사망 뉴스

소리를 들으며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진리의 눈은 사람의 선악을

허공에 도장을 찍어내니

이 세상 제일 무서운 것이 진리의 보응인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섬찟섬찟한 하늘의 이 벌,

남아있는 시간이라도 마음공부 제대로 하여

큰 죄짓지 않고 가야 할 텐데

큰일이다.

삼 부자가 나란히 정상에 섰다.

사진을 찍으며 그 아버지에 그 아들들에 모습을 보며

부디 아버지 닮은 큰 부자도 아니요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삶을

자식들의 삶 속에 들어가 앉기를 염원 해 본다.

부처님의 말씀에 이런 말들이 있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 살림의 재판에는 三審이 있나니

初審은 각자의 양심의 판정이요

二審은 대중들이 그 사람을 보고 느끼는 판정이라

三審은 진리 전의 판정이라 하였다.

저 지은대로 호리도 틀림없이 받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질서 진리의 혜복

인과에 보응하는 우리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산 정상의 시원한 공기 속에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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