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꽃부리의 이야기 <2016년 6월 13일>
미술과 시의 특징은 장황하게 서술하는 전체가 아니라, 특수한 구성으로
단순하게 결정시켜 전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있다 했다.
함축의 묘를 글로 그리면 시요, 그림으로 써 내려가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리라.
어쩌면 생각에 색을 입히면 그림이요, 생각을 단순하게 함축하여 글을 입히면
한 편의 시가 되리라.
그래서 마음은 곧 시요 그림이라 여긴다.
사색 뒤에 그려지는 한 생각, 자연 속의 표정을
한 획으로 여백에 쳐 놓고
마음의 동요를 一筆揮之한 시 한 구절
화제의 구절 그림의 맛을 살려 줄 때의
아름다움이란 어찌 그림과 시가 둘이라 마음먹을 것인가.
한 폭의 화선지에 노니는 자연을 시로 노래하며
느끼는 맛이란 詩, 書, 畵를 즐기는 사람으로 그 마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림과 시는 하나이다 둘로 갈라선 예술의 세계
그로 인해 만나는 순간에 따라 인연의 색깔도 달라지리라.
어떤 생각을 못 견디게 그리고 싶었던 시절 만났던 스승님
그 스승 님이 바로 梧亭/안봉규 선생님이다.
중앙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던 시절
굵고 담백하게 청록의 북화풍으로 치시는 산수화와 문인화의 풍성함에
서정의 주린 배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은 한 줄기 소낙비 맞는 후련함 같았다.
인사동 화실을 들러 인사드리면 오정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임여사!!! 화가들은 너무 많아, 화가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운다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야 해"
그렇게 가리키시며 2시간 강의 중 1시간은 꼭 이론 강의를 해주셨다.
신의 경지 같은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성보다는 작가가 오랫동안 사추하며 달관한 사의적인 것을
바탕으로 일점 일획에 집약된 정신의 응어리들 文氣와 畵氣 무엇이 다른가.
쓰고 그릴뿐인 것이다.
화합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일체 정신세계를 수행한 것이다.
한 편의 멋진 시처럼....
꿈과 낭만을 안겨 주셨던 스승님은 이제 가셨다.
그 많은 가슴을 화폭에 풍성하게 남기시고 2014년 떠나셨다
제자들 가슴에 남겨주신 그림의 화풍과 설날이면 어김없이 보내주셨던 카드를 남기시고....
가끔 인사동 화실에 들려 어설프게 쓴 시를 읽어드리면 빙긋이 웃으시며
"시인도 되려고 그래, 욕심도 많군, 예술은 비워야 해"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시더니 어느 날 방송에 나오시는 선생님을 뵙고
방송국에서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를 걸었더니 중풍으로 안성에서
칩거하고 계셨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시집을 들고 가겠다는 말씀을 드리니
"기어이 시를 쓰는군, 욕심내지 마시게, 인생 별거 아냐 한 번 보세"
그 말씀이 마지막이셨다.
만나고파 다시 전화를 드리니 사모님이 받으셨다. 가셨다고.
나에겐 "이 그림은 바로 임여사야" 하고 그려 주신 그림 한 폭과
설날이면 날아오던 "새해 카드" 그림 그리고 이런 필체의 안부를 남기시고 가셨다.
화가로도 시인으로도 완전하지 못한 길을 걸어온 제자는 이렇게 힘없는 그림을 그리고 이런 시 한 수로 스승님을 그린다.
능소화 /임 선영
칭칭 감다 못해 축 늘어진 체
길거리 담장 타고 올라
하늘 우러르지 못한다
못다 한 죄스러운 한
뚝뚝 떨구며
한여름 날을 흔드는 너도
머지않아 空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