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꽃부리의 이야기 <2012년 4월 17일 >
어려서의 성장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느낀다.
끼니 때마다 둥근 대상 2개, 아랫묵에 겸상 하나 이렇게 잔치 집처럼 북적북적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밥상에는 늘 성이 다른 사람이 한 두 사람은 끼여들어 끼니를 때웠고
대문 앞에는 궂은 날 빼고는 손님상이 차려져 있었다.
밥 한그릇에 국 한사발, 그리고 김치 누가 먹어 치웠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늘 비워져 있었다.
주인공은 나이가 늘 닷살인 군짠 아저씨, 서고도리에 소 미친년은 당골이였을 것이다라는
짐작만 할 뿐이였다.
소 미친년은 00 소씨 가문에 딸이여서 소씨들이 담 옆에 조그만 집까지 지여 주워서
집까지 있었다.
지금 세상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어린 시절에는 집안의 도덕이 값지게
살아 있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음 적으로 돕기도 하였다.
어느 날인가 서울에서 둘째 큰아버지가 딸들을 보려 오셨는데 소미친년과 마주쳤다.
그 뒤부터는 큰아버지가 미남이다고 매일 우리집을 들렸다. 큰아버지 안계시냐고....
우리집에 웃음거리가 되여 소미친년만 우리집 대문에 들어서면 큰아버지 사랑하는
사람이 왔다고 할머니는 밥 좀 잘 챙겨서 보내라고 아래채 동기엄니한테 시켰다.
이렇게 사람사는 소리가 나고 사람이 북적대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사람
모여드는것이 참 좋다.
먹이고 입히는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성품을 닮아서인가, 그런 환경을 보고
자라서인지 집안에 큰 며느리로써, 먹이고 다독 거리는것이 참 행복하다.
또 그런 자리에 자신이 처해진것을 한 번도 후회 해 본적이 없다.
베풀 수 있는 환경을 주신것에 감사하고, 큰 노릇을 할 수 있는것에
감사하고, 기쁨이 넘친다.
동갑내기 시누이를 중매하고 시집 보내던 날, 이불을 꼬메고
결혼 식장에 가지고 갈 음식을
장만 하면서, 잘 살기를 념원하며 엄마없이 시집가는 시누이가 얼마나 가엾어서
눈물 찔끔거리던 그 옛날의 내 자신이 지금도 그리워진다.
그 시누이 부부가 오랫만에 고국에 형제들을 만나러 왔다.
멀리 떨어저있는 소중한 인연 결코 함부로해서 보낼 수 없는 귀한 손님이다.
동갑이지만 깍뜻이 언니를 섬기고 엄마처럼 의지하는 시누이 같지 않고 딸 같은
인연이다. 선생님이였던 티를 하나도 내지 않는 겸손함과 착함을 겸비한 귀한
내곁의 인연, 한 달간의 일정에 서운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신앙인으로써 도라는것이 별거겠는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우주 만물이 모두 그대로 지극한 도이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를 따르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처한 자리 필요한 곳에서
꾀 부리지 않고, 악한 마음 먹지않고, 최선을 다 하는 일
원천수가 있어야 온 방죽의 물을 맑힐 수 있듯이
집안에 맑은 원천수가 되다보면, 시일이 문제이지
결국은 다 맑아지리라 본다.
신앙 안에서 귀가 닿도록 배운 마음을 찾아서 밝히고
마음을 넓혀서 키우는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있겠는가.
부모가 될 자리에 부모의 마음으로 모두를 품어 안아 내 사람으로
다독다독 거리는 일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한 가정의 질서와 안녕을 도모하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어찌 안녕을 구할 수 있겠는가, 내 식구들에게 복짓는 재미를 알고
복을 짓는 사람이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명심보감에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으니
옷은 떨어지면 다시 새것을 얻을수 있으나
손과 발이 끊어지면 다시 이을수 없다 하지 않던가
한 집안에 시집을 와서 이리 중요한 형제의 의를 가로막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할것이다.
핵가족 핵가족이라하여 따로따로 흩어져있는 형제들 핵가족의 잔치로만
끝나는 이런 저런일들, 한 세상 살아가는데 삭막하기 이를 때 없다.
시누이가 이야기한다.
"언니, 미국에서 우리 핵가족이라는게 들어왔지, 그래서 미국은 다 그런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얼마나 가족끼리 결속이되여 주말마다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해 가지고
와서 모여서 오손도손 어울리는지 몰라, 물론 남자들은 밖에서 고기를 굽고, 여자들은
안에서 음식을 차리고, 형제끼리 오손도손하는 모습이 우리 어려서 같더라고요"
우리는 어디서 못된것만 들여와서 미국식이라 한다고 한다.
"언니, 우리식구 이렇게 다 모여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주시니, 정말 고맙고, 역시 우리언니야"
거실에서 남자들이 웅성웅성, 큰 방에서 동서들이 깔깔깔, 작은방에서 조카들이
낄낄낄, 사람사는 냄새나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잘했는지 가슴 벅차다.
음식점에 가서 한끼 탁 먹고 헤여지는 것보다, 집안에서 아우르니 옛날 생각이 나고
사진도 보고 지나간 이야기도 하며, 즐거워하는 먼곳에서 고국을 찾은
시누이의 외로움이 녹아나는 냄새가 베란다에서 활짝피여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깅기아나" 향 처럼 향기롭다.
웃음소리 집안 가득하니
현명한 아내는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못된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하지 않던가
여자를 잘 가르치면 남의 집안을 흥하게 만들고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어질고 현명한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복중에 큰 복이라 하였다.
현명한 아내의 노릇이 먼 곳에 있는것이 아니요, 돈이 많아야 되는 일도 아닐것이다.
작은 배려로 집안 전체가 행복 해질수 있다면 이것이 아내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도덕 상실의 시대, 핵가족의 시대에 잠시라도 옛날의 가족 모습으로 돌아간 하루가
비록 일이 끝난후 마음만 젊지 기력이 예전만 못해 링게르를 맞고 침대에
누워 있기는 하나 내 가정의 우애가 단 하루일지라도 이루워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가문에 태여나고, 발을 디딘 활짝웃는 여자들의 얼굴을 보라,
"자네, 애썼네, 빨리 추스리게"
"형님, 뵐 면목 없어요, 빨리 일어나세요."
"언니, 우리 언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누워있는 머리맡에 꽃다발을 안은 소리가 울려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