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꽃부리의 이야기 < 2011년 11월 18일 >
우리 집 음식은 대체로 달은 편이다.
건강의 적신호인 단맛을 좋아하는 음식 때문에 자식들도 여간 걱정들을 한다.
술 담배를 안 하는 외조자 덕분에 간식을 장만하다 보니 떡, 과일, 과자, 사탕
입에 즐거운 것을 찾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 들었다.
이제와 식단을 바꾸려 애를 많이 쓰나 하루아침에 고쳐지기가 참 어렵다.
사탕을 먹던 입으로 과일을 먹다 보면 영 맛이 밍밍하고 맛이 없다.
강한 자극적인 맛으로 입맛을 들이다 보면 미각은 제 맛을 볼 수 없게 된다.
강한 향신료에 이미 길들여져서 혀의 맛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싱거우면서도 감칠맛난 음식들을 만들어 먹는데 맛을 제대로 내기가
더욱 어럽다. 인생의 맛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빠르고, 편하고, 그렇게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기계화 속에서
강력하고 화려한 색깔과 쾌감을 쫓는 현란한 고음 속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의상 하며 볼거리들 속에 우리는 산다.
자연을 통해 서서히 느긋하게 느끼는 인간만이 가지는 섬세한 감각은
우리 모두 잃고 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도 너무 자주 가다 보면 낮은 단위의 항생제는 전혀 듣지 않아
높은 단위의 항생제를 점점 찾는 것과 같으리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하물며 인간이 인간을 사귀는 과정 까지도
즐거움과 행복을 강력한 쾌락과 부의 탐닉에만 두는 정서의 몰락
사람들의 관심사가 정과 의리보다는 물질의 양과 드러남에 초점을 맞추는
돌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삭막하고 너무 슬프다.
물질문명이 발달되지 못했던 시대의 정서 속에서 생활하던
옛 시인들은 뜨고 지는 달을 보며 별을 보며 그 많은 시상을 얻을 수 있었고
자연의 무상의 선물 사계절의 나고, 맺고, 피고, 지는 대자연의 리듬을
통해 인생사의 진미를 맛보는 희열을 맛보던 시대는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베토벤의 교향곡보다 더 위대한 자연의 음악소리를 감상하는 셈세한 귀를
우리는 가지고 있음을 수시로 느낀다.
얼마 전 섬진강 주변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자연과 친구 하며 시인이 된 김용택 시인의
강의 중에 지렁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그 감성을 들으며 "바로 저거야" 느꼈던 자연의
소리를 듣는 자연과 같이하는 살아있는 시성을 였보았었다.
정말 맑고 순수하고 꾸밈없는 그의 강의를 듣고 감동적이었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발달된 이 시대의 조류를 타고 편안 안 행복을 추구하며 환상 속에
사는 우리들은 사실 옛사람보다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
까뮈는 "인생은 부조리"라고 했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다.
살면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살다 가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는 부조리가 인생을 지루하고 권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개미 쳇바퀴 들듯이 돌고 도는 의미 없는 삶 속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불행하게도 즐겁고 자극이 심한 오락 문화를 탐닉한다.
그러나 그 쾌락을 탐닉하는 끝은 허전함의 극대화이다.
이것이 이른바 쾌락주의 패러독스다.
이것을 쫓다 보면 권태의 굴레 속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술을 먹게 되고 마약을 하게 되고 자극적으로 그 불쾌감을 잊으려 한다.
무언가의 중독증에 걸려있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스타들이 일류의 중독증에서 인기에 대한 욕구불만이 생기게 되면 헤어나지 못해서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광적인 종교의 맹신자도 현대인의 거짓 욕구, 과잉 개발에 시달리며 거짓된 자기를 쫓다가
가정을 파괴하며, 신들린 듯 전철을 헤매는 맹목적인 환상에 정신을 받친다.
자기를 찾아 헤매는 더욱 벅찬 인생 수양이 모든 분야의 현대인 모두 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다.
나는 가끔 수묵담채화를 친다.
산수화나 수묵화 같은 동양화를 먹의 농담을 통해 쳐 내려가며 어떤 형상에
힘의 강약을 드러내다 보면 스스로 감동을 느낀다.
붓에 먹 한 방울을 묻혀 조족의 힘으로 붓을 쥐고 우족의 힘으로 힘차게 쳐 내려간
작품을 만들어 놓고 나면 하늘을 붕 뜬 기분이다.
그 순간에는 아무 소리도 잡념도 욕심도 없이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치는 한 획에
힘을 어느 곳으로 뻗어 내려치느냐에 따라 작품의 형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념 집중을 한다.
오롯한 마음으로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물이 지나간다. 지나가는 우리 인생과 같다.
그 많은 색들이 무에 그리 필요하더란 말인가. 휘~익 친 먹물 한 점이 그려 낸 자연 참 단순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그야말로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색깔을 모두 합일하면 검은색이지 않는가?
전체를 다 내포하고 있는 색과 그 색을 돋보이게 받쳐주는 흰색의 여백...
그야말로 환장하는 경지이다.
하얀 원고지에 검은 연필심으로 사색을 표현하는 문체나...
하얀 화선지에 붓에 먹물을 묻혀 심상을 그려내는 그림이나...
내 서정의 실오라기 한 줄에 걸려있는 모두 하나인 내 사색의 결정체들이다.
현란한 텔레비전에 오염되지 않는 나의 신경 오라기가 몇 줄 남아 있음이 이 아니 행복 아니고 무엇인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세월 속에서도 녹슬지 않은 마음의 여운, 은근하게 옮겨 놓은 내 정서에 시라는
수필이라는 그림이라는 결정체 비록 유명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잔잔한 법열을 일으키는 귀한 감동을 거기서 얻는다면 거짓말이라 할까?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잔잔한 호수의 거울 같은 평정한 느긋함이
수묵담채화의 흑백처럼 진한 감동과 가라앉아 있는 차분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참다운 자기를 되찾게 해주는 수묵화의 행복론은
업의 소생인 슬픔을 극복하는 행복과 더불어 인생의 내면을 살찌게 해주는 보약이라 아니할 수 없다.